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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연(几筵)은 조선 시대의 국가 제례에서 다양하게 사용된, 제사 참석자들을 위한 제사용 자리인 궤(几)와 연(筵)을 함께 지칭한다. 궤는 둥글고 작은 의자 모양을 하고 있다. 연은 부들로 엮어 만든 자리로서, ‘포연(蒲筵)’이라고도 칭한다.<ref>박봉주,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461 궤연(几筵)]",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br/>
 
궤연(几筵)은 조선 시대의 국가 제례에서 다양하게 사용된, 제사 참석자들을 위한 제사용 자리인 궤(几)와 연(筵)을 함께 지칭한다. 궤는 둥글고 작은 의자 모양을 하고 있다. 연은 부들로 엮어 만든 자리로서, ‘포연(蒲筵)’이라고도 칭한다.<ref>박봉주,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461 궤연(几筵)]",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br/>
[[세종실록오례|『세종실록오례』]] ◎ 연(筵) :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포연(蒲筵:부들자리)은 길이가 7척이요, 나비는 2척 3촌이다."고 하였으며, [[예서|《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제후(諸侯)제사(祭祀)에 자리가 2개이니, 왕골자리[莞席]는 좁은 끈으로 선을 두르고, 부들자리[蒲筵]는 무늬로 수(繡)를 놓는데, 펴는 것을 연(筵)이라 하고, 까는 것을 석(席)이라 한다. 연과 석의 제도는 짧아도 한 길[尋](8척)에 내려가지 아니하고, 길어도 두 길[常](6척)에 지나지 아니하고, 중간 것도 9척에 지나지 아니한다. 《예기(禮器)》에 "상공(上公)대협(大祫)자리를 네 겹으로 펴고, 제후(諸侯)는 대협에 자리를 세 겹으로 펴고, 체제(禘祭)와 시제(時祭)에는 다같이 자리를 두 겹으로 편다."하였는데, 그 말이 경(經)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글에는 모두 겹자리[重席]를 편다고 말하였으며, 모씨(毛氏)가 《시경(詩經)》을 해석하면서, 또한 겹자리를 편다고 하였으니, 제후의 조석(繅席)겹으로 되어 부들자리와 더불어 세 개가 되므로, 그 수효가 마침 예기(禮器)의 수효와 합하게 된다. ◎ 筵 : 《周禮》云: "蒲筵長七尺, 廣二尺三寸。" 《禮書》云: "諸侯祭祀席二, 莞席紛純, 蒲筵繢純。 鋪陳曰筵, 藉之曰席。 筵席之制, 短不過尋, 長不過常, 中者不過九尺。" 《禮器》: "上公大祫, 席四重; 諸侯大祫, 三重; 禘與時祭同, 二重。" 其言無所經見, 然書皆言敷重席。 毛氏釋《詩》, 亦曰設重席, 則諸侯繅席重焉, 與蒲筵而三, 其數適與禮器合矣。<ref>『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35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연],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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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국조오례의』]] ◎ 연(筵) : [[주례도|『주례도(周禮圖)』]]에서 말했다. “포연(蒲筵, 부들자리)은 길이가 7척, 너비는 2척 3촌이다.”○ [[예서|『예서(禮書)]]에서 말했다. “제후(諸侯)제사 자리는 2개인데, 완석분준(莞席紛純, 註 001 사()로 선을 두른 왕골자리)과 포연궤준(蒲筵繢純, 註 002 사(絲)로 무늬를 넣은 부들자리)이다. 펴놓는 것[鋪陳]연(筵)이라 하고, 깔아놓는 것[藉之]을 석(席)이라 한다. 연·석 註 003의 제도는 짧으면 8척[尋] 註 004을 넘지 않고, 길면 1장 6척[常] 註 005을 넘지 않으며, 중간 것도 9척을 넘지 않는다. 『예기(禮記)』에서 ‘상공(上公)대협(大祫) 註 006 제사에는 자리를 네 겹으로 하고, 제후(諸侯)의 대협 제사에는 (자리를) 세 겹으로 하며, 체제(禘祭)와 시제(時祭)에는 모두 두 겹으로 한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경(經)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서(書)에는 모두 겹자리[重席]를 편다고 하고, 모씨(毛氏)가 『시경(詩經)』을 해석하면서, 또한 ‘겹자리를 편다.’고 하였으니, 제후의 소석(繅席) 註 007은 겹으로 펴는데 포연(蒲筵, 부들자리)과 합하여 세 개가 되니, 그 수효가 마침 예기(禮器)와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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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註 001 분순(紛純) : 분순(紛純)은 사(絲)로 선을 두른다는 것이니, 순(純)은 사(絲)요, 분(紛)은 꾸민다[雜]는 것으로 현흑(玄黑)색으로 꾸며서 가장자리를 만든다(『論語』 「子罕」. “子曰, 麻冕, 禮也, 今也純, 儉, 吾從衆【純, 絲也.】.”; 『書經』 卷9, 「顧命」. “西夾南嚮, 敷重筍席玄紛純, 漆仍几【紛, 雜也, 以玄黑之色, 雜爲之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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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註 002 궤순(繢純) : 궤순(繢純)은 사(絲)로 무늬를 그린다는 것이다(『論語』 「子罕·第九」. “子曰, 麻冕, 禮也, 今也純, 儉, 吾從衆【純, 絲也.】.”; 『周禮』 「春官·司几筵」. “諸侯祭祀席,蒲筵繢純,加莞席紛純【繢,畫文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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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註 003 연(筵)·석(席) : 연(筵)은 길고 석(席)은 짧아, 먼저 연(筵)을 하면(下面)에 깔고, 뒤에 석(席)을 상면(上面)에 더하여 사람이 앉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周禮』 「春官·序官」. “司几筵下士二人【鋪陳曰筵,藉之曰席設席之法,先設者皆言筵,後加者爲席〚筵長席短,筵舖陳于下,席在上,爲人所坐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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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註 004 심(尋) : 8척(尺)이다(『周禮』 「考工記·廬人」. “廬人爲廬器,戈柲六尺有六寸,殳長尋有四尺,車戟常,酋矛常有四尺,夷矛三尋【八尺曰尋,倍尋曰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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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註 005 상(常) : 심(尋)의 배이니 1장(丈) 6척(尺)이다. 자세한 것은 위의 심(尋) 주석을 참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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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註 006 대협(大祫) : 대협(大祫)는 합제(合祭)이니, 훼묘(毁廟)의 신주를 태조묘(太祖廟)에 진열하고, 아직 훼묘(毀廟)하지 않은 신주까지 모두 함께 태조묘에 모시고서 제사 지내는 것이다(『春秋公羊傳』 「文公二年」. “大祫者何?合祭也. 其合祭奈何?毀廟之主,陳於太祖, 未毀廟之主,皆升合食於太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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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註 007 소석(繅席) : 포(蒲)를 잘라서 만든 자리로, 다섯 가지 색으로 짜는 것이다(『周禮』 「春官·司几筵」. “加繅席畫純【繅席,, 削蒲蒻展之, 編以五采, 若今合歡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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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筵 : 〈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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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禮圖』云。“蒲筵長七尺, 廣二尺三寸。” 註 001 ○ 『禮書』云。“諸侯祭祀席二, 莞席紛純, 蒲筵繢純。鋪陳曰筵, 藉之曰席。筵·席之制, 短不過尋, 長不過常, 中者不過九尺。『禮記』, ‘上公大祫, 席四重, 諸侯大祫, 三重, 禘與時祭, 同二重。’ 其言無所經見。然書皆言敷重席, 毛氏釋『詩』, 亦曰‘設重席’, 則諸侯繅席重焉, 與蒲筵而三, 其數適與禮器合矣。” 註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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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註 001 『三禮圖集注』 卷8, 「筵」. “舊圖云, 士蒲筵長七尺, 廣三尺三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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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註 002 『禮書』 卷47, 「禮書圖·五席」. “諸侯祭祀席二【蒲筵繢純, 莞席紛純】. … 鄭康成曰, 鋪陳曰筵, 藉之曰席 …鄭氏曰, 燕禮私臣屈也, 筵席之制, 短不過尋, 長不過常, 中者不過九尺. … 賈公彦釋禮器謂, 天子大祫席五重, 禘祭四重, 時祭三重, 上公大祫四重, 諸侯大祫三重, 禘與時祭同二重. 其言無所經見, 然書皆言敷重席. 毛氏釋詩亦曰, 設重席, 則王之次席繅席皆重焉, 與莞筵而五, 諸侯繅席亦重焉, 與蒲筵而三, 其數適與禮器合矣.”<ref>『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筵], <html><online style="color:purple">『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sup>online</sup></online></html>,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br/>『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권1, 길례(吉禮), 제기(祭器)의 도설(圖說), [http://db.history.go.kr/law/item/compareViewer.do?levelId=jlawb_230r_0010_0010_0130_0370 (筵)],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시대법령자료』<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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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조오례의_의]] || [[국조오례의_연]] || [[isRelated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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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실록오례_연]] || [[국조오례의_연]] || [[isRelatedTo]]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포연(蒲筵)은 길이가 7尺, 나비는 2尺 3寸이다.”고 하였으며,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제후(諸侯)는 제사(祭祀)에 자리가 2개이니, 왕골자리[莞席]는 좁은 끈으로 선을 두르고, 부들자리[蒲筵]는 무늬로 수(繡)를 놓는데, 펴는 것을 연(筵)이라 하고, 까는 것을 석(席)이라 한다. 연과 석의 제도는 짧아도 한 길[尋]에 내려가지 아니하고, 길어도 두 길[常]에 지나지 아니하고, 중간 것도 9尺에 지나지 아니한다. 『예기(禮器)』에 “상공(上公)은 대협(大祫)에 자리를 네 겹으로 펴고, 제후(諸侯)는 대협에 자리를 세 겹으로 펴고, 체제(禘祭)와 시제(時祭)에는 다 같이 자리를 두 겹으로 편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경(經)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글에는 모두 겹자리[重席]를 편다고 말하였으며, 모씨(毛氏)가 『시경(詩經)』을 해석하면서, 또한 겹자리를 편다고 하였으니, 제후의 조석(繅席)이 겹으로 되어 부들자리와 더불어 세 개가 되므로, 그 수효가 마침 예기(禮器)의 수효와 합하게 된다. 周禮云蒲筵長七尺廣二尺三寸禮書云諸侯祭祀席二莞席紛純蒲筵繢純鋪陳曰筵藉之曰席筵席之制短不過尋長不過常中者不過九尺禮器上公大祫席四重諸侯大祫三重禘與時祭同二重其言無所經見然書皆言敷重席毛氏釋詩亦曰設重席則諸侯繅席重焉與蒲筵而三其數適與禮器合矣 <ref>『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35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연],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br/>『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https://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0713 연]",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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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조상례보편_연]] || [[국조오례의_연]] || [[isRelatedTo]]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항목 없음.<ref>『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https://www.koreantk.com/ktkp2014/search-all/search-by-keyword.page?pageNo=1&pageSize=&keyword=국조상례보편&target=CRA 국조상례보편/연],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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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실록오례_연]] || [[국조오례의_연]] || [[isRelatedTo]] ||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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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관통고]] || [[국조오례의_연]] || [[isRelatedTo]] || <춘관통고 권86, 흉례(凶禮)> 항목 없음. <ref>『춘관통고』 86권, 흉례(凶禮), [https://www.koreantk.com/ktkp2014/search-all/search-by-keyword.page?&pageSize=&keyword=춘관통고&target=CRA&setId=10551&sl=&pageNo=5 춘관통고+연],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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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조상례보편_연]] || [[국조오례의_연]] || [[isRelatedTo]] ||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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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예전_완연(莞筵)]] || [[국조오례의_연]] || [[isRelatedTo]]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춘관(周禮春官)』에 “사궤연(司几筵)은 대조근(大朝覲)이나 대향사(大享射) 및 제후에게 나라를 봉(封)하는 명을 내릴 때 왕의 자리에 보의(黼依)를 설치하고 보의 앞에 남향으로 왕골자리[莞筵] 분(紛)색으로 선을 두른 왕골자리를 깔고, 무늬를 그린 선을 두른 자리[繅席]를 얹고 그 위에 보문[黼]으로 선을 두른 자리를 얹고 좌우에 옥궤(玉几)를 놓는다. 제사를 지내되 선왕에게 잔과 자리를 마련하여 또한 이와 같이 한다.”라고 했다. 정씨(鄭氏)에 이르되 “연석(筵席)의 제도는 짧은 것은 평소 대로 하고, 긴 것은 보통 대로 하며, 중간 것은 9尺을 넘지 않게 한다. 가장자리의 선[純]의 제도는 윗 사람의 것은 보문[黼]을 넣은 것으로 두르고 아래 사람의 것은 검은 베[布]로 싼다.”고 했다. 진씨(陳氏)의 예서『禮書』에 “공언석(公彦釋)의 예기『禮器』에 이르되 천자가 협사하는 자리는 다섯 겹으로 하고 체제(禘祭)에는 네 겹으로 시제(時祭)에는 세 겹으로 한다.”라고 했다. 그 말은 경(經)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서경(書經)』에 모두 겹자리를 편다고 했고, 모씨석시(毛氏釋詩)에도 겹자리를 깐다고 했으며 즉 왕의 차석소석(次席繅席)은 다 겹으로 하고 완연(莞筵)도 그렇게 한다. 모두가 함께 같으니 예기『禮器』와 맞는다. 周禮春官司几筵云凡大朝覲大饗射凡封國命諸侯王位設黼依依前南鄕設莞筵紛純加繅席畫純加次席黼純左右玉几祀先王酢席亦如之鄭氏曰筵席之制短不過尋長不過常中者不過九 尺純緣之制上不過黼下不過緇布陳氏禮書曰公彦釋禮器謂天子大祫席五重禘祭四重時祭三重其言無所經見然書皆言數重席毛氏釋詩亦曰設重席則王之次席繅席皆重與莞筵而五共適與禮器合矣 <ref>『대한예전』 3권, 길례 제기도설, [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1498 완연],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탈』<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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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정조 7) 1월 8일에 사직서(社稷署)의 제례의식[祭儀]제식(祭式)·단(壇)·유(壝)·관사(館舍) 등을 참고하고자 작성된 5권 3책의 의궤가 편찬되어, 1804년(순조 4) 1차 증보되고, 1842년(현종 8) 2차 증보됨.</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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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도감의궤』는 1611년(광해군 3) 8월 24일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에 친제(親祭)를 거행하기 위해 제기가 부족하자, 그해 9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듬해까지 제기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제기를 만든 전말을 기록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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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9일 (일) 16:36 기준 최신판

Definition

궤연(几筵)은 조선 시대의 국가 제례에서 다양하게 사용된, 제사 참석자들을 위한 제사용 자리인 궤(几)와 연(筵)을 함께 지칭한다. 궤는 둥글고 작은 의자 모양을 하고 있다. 연은 부들로 엮어 만든 자리로서, ‘포연(蒲筵)’이라고도 칭한다.[1]
『국조오례의』 ◎ 연(筵) : 『주례도(周禮圖)』에서 말했다. “포연(蒲筵, 부들자리)은 길이가 7척, 너비는 2척 3촌이다.”○ 『예서(禮書)』에서 말했다. “제후(諸侯)의 제사 자리는 2개인데, 완석분준(莞席紛純, 註 001 사(絲)로 선을 두른 왕골자리)과 포연궤준(蒲筵繢純, 註 002 사(絲)로 무늬를 넣은 부들자리)이다. 펴놓는 것[鋪陳]을 연(筵)이라 하고, 깔아놓는 것[藉之]을 석(席)이라 한다. 연·석 註 003의 제도는 짧으면 8척[尋] 註 004을 넘지 않고, 길면 1장 6척[常] 註 005을 넘지 않으며, 중간 것도 9척을 넘지 않는다. 『예기(禮記)』에서 ‘상공(上公)의 대협(大祫) 註 006 제사에는 자리를 네 겹으로 하고, 제후(諸侯)의 대협 제사에는 (자리를) 세 겹으로 하며, 체제(禘祭)와 시제(時祭)에는 모두 두 겹으로 한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경(經)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서(書)에는 모두 겹자리[重席]를 편다고 하고, 모씨(毛氏)가 『시경(詩經)』을 해석하면서, 또한 ‘겹자리를 편다.’고 하였으니, 제후의 소석(繅席) 註 007은 겹으로 펴는데 포연(蒲筵, 부들자리)과 합하여 세 개가 되니, 그 수효가 마침 예기(禮器)와 부합한다.”
註 001 분순(紛純) : 분순(紛純)은 사(絲)로 선을 두른다는 것이니, 순(純)은 사(絲)요, 분(紛)은 꾸민다[雜]는 것으로 현흑(玄黑)색으로 꾸며서 가장자리를 만든다(『論語』 「子罕」. “子曰, 麻冕, 禮也, 今也純, 儉, 吾從衆【純, 絲也.】.”; 『書經』 卷9, 「顧命」. “西夾南嚮, 敷重筍席玄紛純, 漆仍几【紛, 雜也, 以玄黑之色, 雜爲之緣.】.”).
註 002 궤순(繢純) : 궤순(繢純)은 사(絲)로 무늬를 그린다는 것이다(『論語』 「子罕·第九」. “子曰, 麻冕, 禮也, 今也純, 儉, 吾從衆【純, 絲也.】.”; 『周禮』 「春官·司几筵」. “諸侯祭祀席,蒲筵繢純,加莞席紛純【繢,畫文也.】.”).
註 003 연(筵)·석(席) : 연(筵)은 길고 석(席)은 짧아, 먼저 연(筵)을 하면(下面)에 깔고, 뒤에 석(席)을 상면(上面)에 더하여 사람이 앉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周禮』 「春官·序官」. “司几筵下士二人【鋪陳曰筵,藉之曰席設席之法,先設者皆言筵,後加者爲席〚筵長席短,筵舖陳于下,席在上,爲人所坐藉.〛..】.”).
註 004 심(尋) : 8척(尺)이다(『周禮』 「考工記·廬人」. “廬人爲廬器,戈柲六尺有六寸,殳長尋有四尺,車戟常,酋矛常有四尺,夷矛三尋【八尺曰尋,倍尋曰常.】.”).
註 005 상(常) : 심(尋)의 배이니 1장(丈) 6척(尺)이다. 자세한 것은 위의 심(尋) 주석을 참고한다.
註 006 대협(大祫) : 대협(大祫)는 합제(合祭)이니, 훼묘(毁廟)의 신주를 태조묘(太祖廟)에 진열하고, 아직 훼묘(毀廟)하지 않은 신주까지 모두 함께 태조묘에 모시고서 제사 지내는 것이다(『春秋公羊傳』 「文公二年」. “大祫者何?合祭也. 其合祭奈何?毀廟之主,陳於太祖, 未毀廟之主,皆升合食於太祖.”).
註 007 소석(繅席) : 포(蒲)를 잘라서 만든 자리로, 다섯 가지 색으로 짜는 것이다(『周禮』 「春官·司几筵」. “加繅席畫純【繅席,, 削蒲蒻展之, 編以五采, 若今合歡矣.】.”).
◎ 筵 : 〈圖〉 『周禮圖』云。“蒲筵長七尺, 廣二尺三寸。” 註 001 ○ 『禮書』云。“諸侯祭祀席二, 莞席紛純, 蒲筵繢純。鋪陳曰筵, 藉之曰席。筵·席之制, 短不過尋, 長不過常, 中者不過九尺。『禮記』, ‘上公大祫, 席四重, 諸侯大祫, 三重, 禘與時祭, 同二重。’ 其言無所經見。然書皆言敷重席, 毛氏釋『詩』, 亦曰‘設重席’, 則諸侯繅席重焉, 與蒲筵而三, 其數適與禮器合矣。” 註 002
註 001 『三禮圖集注』 卷8, 「筵」. “舊圖云, 士蒲筵長七尺, 廣三尺三寸.”
註 002 『禮書』 卷47, 「禮書圖·五席」. “諸侯祭祀席二【蒲筵繢純, 莞席紛純】. … 鄭康成曰, 鋪陳曰筵, 藉之曰席 …鄭氏曰, 燕禮私臣屈也, 筵席之制, 短不過尋, 長不過常, 中者不過九尺. … 賈公彦釋禮器謂, 天子大祫席五重, 禘祭四重, 時祭三重, 上公大祫四重, 諸侯大祫三重, 禘與時祭同二重. 其言無所經見, 然書皆言敷重席. 毛氏釋詩亦曰, 設重席, 則王之次席繅席皆重焉, 與莞筵而五, 諸侯繅席亦重焉, 與蒲筵而三, 其數適與禮器合矣.”[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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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_연 Object 물품 제기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_연(筵) 국조오례의_연 國朝五禮儀_筵 ritual vessel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국조오례의_연


한국전통지식포탈[1]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value
id 국조오례의_연
이칭/별칭 연, 궤연(几筵), 포연(蒲筵), 완연(莞筵)
재질
색상
사용처 국가제사, 왕실제사, 사직제, 길례, 흉례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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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 국조오례의:서례길례:제기도설:연 hasPart
국조오례의:서례길례:제기도설:연 국조오례의_연 depicts
국조오례의:서례길례:제기도설:연 주례도 references
국조오례의:서례길례:제기도설:연 예서 references
국조오례의_연 연-筵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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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_궤-几 국조오례의_연 isRelatedTo
세종실록오례_연 국조오례의_연 isRelatedTo
국조상례보편_연 국조오례의_연 isRelatedTo
춘관통고_연 국조오례의_연 isRelatedTo
대한예전_완연 국조오례의_연 isRelatedTo 완연(莞筵)
종묘의궤_연 국조오례의_연 isRelatedTo
사직서의궤_연 국조오례의_연 isRelatedTo
제기도감의궤_연 국조오례의_연 isRelatedTo
경모궁의궤_연 국조오례의_연 isRelatedTo
국조오례의_연 사직제 isUsedIn
국조오례의_연 길례 isUsedIn
국조오례의_연 흉례 isUsedIn

Spatial Data

Spatial Information Nodes

gid region label hanja latitude longitude altitue description

Spati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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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Data

Temporal Information Nodes

tid timeSpan label hanja lunarDate solarDate indexDate description

Tempor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Online Reference

type resource title description/caption URL
도설 세종실록오례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연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35
도설 국조오례의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참고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연筵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809&category=A&sWord=연
참고 한국전통지식포탈 https://www.koreantk.com/ktkp2014/search-all/search-by-keyword.page?sl=&&pageSize=&keyword=연&setId=12452&pageNo=1&target=CRA
참고 조선왕조실록사전 궤연(几筵)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461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기 연 항목 없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제기&ridx=0&tot=296
참고 위키 실록사전 궤연(几筵)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궤연(几筵)
참고 AKS Encyves 연 항목 없음.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대문
도해 세종실록오례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10a03.jpg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title publication edition URL
박봉주,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박봉주, 「조선시대 국가 祭禮와 준․뢰의 사용」, 『조선시대사학보』58, 조선시대사학회, 2011.
박수정, 「조선초기 의례(儀禮)제정과 희준(犧尊)·상준(象尊)의 역사적 의미」, 『조선시대사학보』60, 조선시대사학회, 2012.
최순권,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궁중유물전시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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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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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1. 박봉주, "궤연(几筵)", 『조선왕조실록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online,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권1, 길례(吉禮), 제기(祭器)의 도설(圖說), 연(筵), 『조선시대법령자료』online,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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