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오례의 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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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9일 (일) 16:29 판

Definition

의(扆)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 때 사용하는 병풍(屛風)이다. [1]
『국조오례의』 ◎ 의(扆) : 『예서(禮書)』에서 말했다. “의(扆)는 (『주례(周禮)』) 「사궤연(司几筵)」에서 ‘보의(黼依)를 설치한다. 부(斧, 도끼) 모양을 일러 보(黼)라 하니, 그 수(繡)는 백흑(白黑)의 문양으로 하고, 강백(絳帛, 붉은 비단)을 바탕으로 한다. 의(依)의 제도는 병풍(屛風)과 같다.’ 『시경(詩經)』의 「공유(公劉)」에서 말하길, ‘이미 (연(筵)에) 오르고 (궤(几)에) 의지하도다[依].’라고 하였고, 『의례(儀禮)』 「사우례(士虞禮)」에서는 ‘좌식(佐食) 註 001이 아무 일 없이 문을 나와서 의(依)를 등지고[負依] 남면(南面)한다.’라고 하였다. 대개 제후(諸侯)에서 사(士)에 이르기까지 모두 의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그리지 않기도 하였으나 상고할 수 없다.”
註 001 좌식(佐食) : 좌식(佐食)은 빈(賓)으로서 시동(尸童)이 먹는 것을 돕는 자이다(『儀禮』 「特牲饋食禮」. “佐食北面,立於中庭【佐食,賓佐尸食者.】.”).
◎ 扆 : 〈圖〉 『禮書』云。“扆, 「司几筵」‘設黼依。斧謂之黼, 其繡白黑文, 以絳帛爲質。依制如屛風。’ 『詩』 「公劉」曰, ‘旣登乃依。’, 「士虞禮」, ‘佐食無事出戶, 負依南面。’ 蓋諸侯至士, 皆有依焉。或畫或否, 不可考也。” 註 001
註 001 『禮書』 卷45, 「禮書圖·扆」. “司几筵, … 設黼依【斧謂之黼, 其繡白黑彩, 以絳帛爲質, 依其制如屛風.】. … 士虞禮, 佐食無事出户, 負依南面. … 詩公劉曰, 俾筵俾几, 旣登乃依. … 蓋諸侯至士, 皆有依焉. 或畫或否, 不可考也.”[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class groupName partName label hangeul hanja english infoUrl iconUrl
국조오례의_의 Object 물품 제기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_의(扆) 국조오례의_의 國朝五禮儀_扆 ritual vessel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국조오례의_의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value
id 국조오례의_의
이칭/별칭 의, 보의(黼扆), 신의(神扆)
재질
색상
사용처 국가제사, 왕실제사, 사직제, 길례, 흉례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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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 국조오례의:서례길례:제기도설:의 hasPart
국조오례의:서례길례:제기도설:의 국조오례의_의 depi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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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_의 type
국조오례의_궤-几 국조오례의_궤-几 isRelatedTo
국조오례의_연 국조오례의_궤-几 isRelatedTo
세종실록오례_의 국조오례의_의 isRelatedTo
국조상례보편_의 국조오례의_의 isRelatedTo
춘관통고 국조오례의_의 isRelatedTo
대한예전_보의 국조오례의_의 isRelatedTo 보의(黼扆)
대한예전_신의 국조오례의_의 isRelatedTo 신의(神扆)
종묘의궤_의 국조오례의_의 isRelated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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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도감의궤_의 국조오례의_의 isRelatedTo
경모궁의궤_의 국조오례의_의 isRelatedTo
국조오례의_의 사직제 isUse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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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_의 흉례 isUsedIn

Spatial Data

Spatial Information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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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ti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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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Data

Temporal Information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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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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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type resource title desctription/caption URL
도설 세종실록오례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의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33
도설 국조오례의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참고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의扆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1010&category=A&sWord=扆
참고 한국전통지식포탈 국조오례의 의 http://www.cbd-chm.go.kr/home/rsc/rsc01003p_6.do?dt_gbn=TC&data_gbn_cd=BIO&cls_no=120000023992&cls_id=13392&pageIndex=132
참고 조선왕조실록사전 의 항목 없음.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451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기 의 항목 없음.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제기&ridx=0&tot=296
참고 위키 실록사전 의 항목 없음.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대문
참고 AKS Encyves 의 항목 없음.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대문
도해 세종실록오례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10a01.jpg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title publication edition URL
박봉주,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박봉주, 「조선시대 국가 祭禮와 준․뢰의 사용」, 『조선시대사학보』58, 조선시대사학회, 2011.
박수정, 「조선초기 의례(儀禮)제정과 희준(犧尊)·상준(象尊)의 역사적 의미」, 『조선시대사학보』60, 조선시대사학회, 2012.
최순권,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궁중유물전시관, 2004.
최순권, 「조선시대 이준(彛尊)에 대한 고찰」, 『생활문물연구』14, 국립민속박물관, 2004.
정소라,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조선시대사학회, 1999.
하은미,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김종일,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김종임,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한국미술사학회, 2013.
손명희,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이귀영,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윤방언, 『조선왕조 종묘와 제례』, 문화재청, 2002.
국립고궁박물관,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국립고궁박물관, 2014.
궁중유물전시관, 『종묘대제문물』, 궁중유물전시관, 2004.

Notes

  1. "",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2. 『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online,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권1, 길례(吉禮), 제기(祭器)의 도설(圖說), 의(扆), 『조선시대법령자료』online,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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