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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8일 (수) 16:15 기준 최신판
Definition
조선시대 국가 제사에서 관례(祼禮)를 행할 때 울창주(鬱鬯酒)를 관지통에 따르는 데에 사용하는 제기.[1]
『국조오례의』 ◎ 찬(瓚) : 『주례』에서 말했다. “상공(上公)의 장찬(璋瓚) 註 001 자루와 용수(龍首)는 옥으로 만든다.” 또 말했다. “찬의 자루는, 천자는 규(圭)로 자루를 만드는데, 길이는 1척 2촌이요, 사(射)는 4촌이요사(射)는 위를 깎아내어 비스듬하고 뾰족하게 하는 것이다., 두께는 1촌이요, 너비는 3촌이다. 제후는 장(璋)으로 자루를 만드는데반쪽인 규가 장(璋)이다., 길이는 9촌이요, 사는 4촌이요, 두께는 1촌이요 너비는 1촌 5푼이다.” 또 말하길, “비(鼻)는 1촌이다.”라고 하고 그 주(注)에 “비(鼻)는 용두(龍頭)를 말하는데 그 높이는 1촌이다작보다 1촌이 높다..”라고 하였다. 또 『주례』 주에 “유(流)가 있다.”라고 하고 앞주에서 또 말하길 “비(鼻)는 작류(勺流)이니, 대체로 유(流)는 모두 용구(龍口)이다.”라고 하였다.
○ 한의 제도에 작(勺)은 직경은 8촌이요, 깊이는 2촌이다.
○ 『문헌통고(文獻通考)』에서 말했다. “오늘날 친히 태묘(太廟)에 제사를 지낼 때에는 금은을 칠한 찬(瓚)으로 하고, 유사(有司)가 행사(行事) 註 002할 때에는 동찬(銅瓚)으로 한다.” 지금 종묘에 (국왕이) 친향할 때에는 은찬(銀瓚)을 쓰고, 섭사할 때에는 동찬(銅瓚)을 쓴다찬반(瓚盤)도 같다. ○ 자는 주척(周尺)을 쓴다.
註 001 장찬(璋瓚) : 장찬(璋瓚)은 관제(祼祭)에 사용하는 제기(祭器)이니, 장(璋)으로 자루를 만든다(『禮記』 「祭統」. “君執圭瓚祼尸, 大宗執璋瓚亞祼【圭瓚, 璋瓚, 祼器也, 以圭璋爲柄.】.”).
註 002 행사(行事) : 황제나 국왕을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대행하는 일을 말한다.
◎ 瓚 : 〈圖: 射四寸|慱寸五分|璋長九寸厚寸|勺|口徑八寸|深二寸|鼻寸〉『周禮』云。“上公璋瓚柄及龍首, 以玉爲之。” 又云。“瓚柄, 天子以圭爲柄, 長尺二寸, 射四寸射, 剡上斜銳之也。, 厚寸, 慱三寸。諸侯以璋爲柄半圭爲璋。, 長九寸, 射四寸, 厚寸, 慱寸五分。” 又云, “鼻寸。”, 注, “鼻謂龍頭, 其高寸高於勺一寸也。。” 又『周禮』注云, “有流。” 註 001, 前注又云, “鼻勺流也, 凡流皆爲龍口也。” 註 002
○ 漢制, 勺, 徑八寸, 深二寸。
○ 『文獻通考』云。“今親祀太廟, 以塗金銀瓚, 有司行事, 以銅瓚。” 註 003 今親享宗廟, 用銀瓚, 攝事用銅瓚瓚盤同。○ 尺用周尺。
註 001 『周禮集說』 卷10. “【薜氏曰, 祼圭有瓚, 瓚如槃, 大五升, 口徑二寸, 其柄用圭, 圭長尺有二寸, 有流, 前注凡流皆爲龍口.】.”
註 002 『周禮注疏』 卷41, 「冬官考工記下」. “【鄭司農云, 鼻謂勺龍頭鼻也, 衡謂勺柄龍頭也, 玄謂鼻勺流也. 凡流皆爲龍口也.】.”
註 003 『文獻通考』 卷98, 「宗廟考八·祭祀時享」. “今親祀太廟, 以塗金銀瓚, 有司行事, 以銅瓚.”[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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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_찬 | Object | 물품 | 제기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_찬(瓚) | 국조오례의_찬 | 國朝五禮儀_瓚 | ritual vessel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국조오례의_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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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찬, 찬반, 용찬, 용찬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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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_찬 | 규찬 | type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周禮)』에 말하기를, “상공(上公)의 장찬(璋瓚)의 자루 및 용수(龍首)는 옥으로 만든다.” 했다. 또 말하기를, “찬(瓚)의 자루를 천자(天子)는 규(圭)로 만드는데, 길이가 1尺 2寸이요, 모는 4寸이다. [모는 위를 깎아서 모나고 뾰족하게 한다.] 두께는 1寸이요, 너비는 3寸이다. 제후(諸侯)는 장(璋)으로 자루를 하는데, [반규(半圭)를 장(璋)으로 한다.] 길이가 9寸이요, 모가 4寸이다. 두께는 1寸이요, 너비는 1寸 5分이다.” 했다. 또 말하기를, “비(鼻)는 1寸이다.” 하고, 『주(註)』에 비(鼻)는 용두(龍頭)를 말하는 것인데, 그 높이는 1寸이라 했다. [작(勺)보다 1寸이 높다.] 또 『주례주(周禮注)』에 말하기를, “유(流)가 있다.” 했다. 앞주(前註)에 또 말하기를 “비(鼻)는 작류(勺流)이다.” 했으니, 대체로 유(流)는 모두 용구(龍口)인 것이다. ○ 한(漢)의 제도에 작(勺)의 지름[徑]은 8寸이요, 깊이는 2寸이다. ○『문헌통고(文獻通考)』에 말하기를, “지금 친히 태묘(太廟)에 제사지내는 데는 금은(金銀)을 칠한 찬(瓚)으로 하고, 유사(有司)가 행사(行事)하는 데는 동찬(銅瓚)으로 한다. 지금 친히 종묘(宗廟)에 제사 지내는 데에는 은찬(銀瓚)을 쓰고, 섭사(攝事)에는 동찬(銅瓚)을 쓴다.” 했다. [찬반(瓚盤)도 같다. 자는 주척(周尺)을 쓴다.] 周禮云上公璋瓉柄及龍首以玉爲之又云瓉柄天子以圭爲柄長尺二寸射四寸[射刻上斜銳之也]厚寸愽三寸諸侯以璋爲柄[半圭爲璋]長九寸射四寸厚寸愽寸五分又云鼻寸注鼻謂龍頭其高寸[高於勺一于也]又周禮注云有流前注又云鼻勺流也凡流皆爲龍口也○漢制勺徑八寸深二寸○文獻通考云今親祀太廟以塗金銀瓉有司行事以銅瓉 今親享宗廟用銀瓉攝事用銅瓉[瓉盤同○尺用周尺] [3] | 한국전통지식포탈[2] |
국조오례의_찬반 | 규찬 | type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周禮)』 전서주(典瑞注)에 말하기를, “찬(瓚) 밑에 반(盤)이 있는데, 입지름[口徑]이 1尺이다.” 했다. 『섭숭의(攝崇義)』가 말하기를, “깊이가 1寸이요, 발의 지름[足徑]이 8寸이요, 높이가 2寸이어야 한다.” 하였다. 周禮典瑞注云瓚下有盤口徑一尺聶崇義云宜深一寸足徑八寸高二寸 [4] | 한국전통지식포탈[3] |
국조오례의_찬 | 국조오례의_찬반 | goesWith | ||
세종실록오례_규찬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도(周禮圖)』에 이르기를, “옥인(玉人)이 규(圭)로서 관(祼)하니 1尺 2寸이며, 찬(瓚)이 있어 묘(廟)에 제사한다.”고 하였는데, 주(注)에 “관(祼)은 처음 술잔을 드려 강신(降神)함을 이름이요, 찬(瓚)은 반(槃)과 같은데, 그 자루[柄]에 규(圭)를 사용하고, 유전(流箭)이 있어 술을 따르게 된다.”고 하였다. 옥인에 이르기를, “사(射)가 4寸, 두께가 1寸이다. 황금(黃金)의 작(勺)에 청금(靑金)을 밖에다 칠하고, 속은 주색(朱色), 코[鼻]가 1寸이다. 형(衡)이 4寸인데, 옥받침[繅]이 있다.”고 하였다. 주(注)에 이르기를, “사(射)는 뾰족이 나온 것이요, 작(勺)은 비류(鼻流)이다. 유(流)는 용구(龍口)가 되고, 형(衡)은 작(勺)의 지름을 이른 것이다.”고 하였다. 관기(祼器)에서 천자(天子)는 전체를 옥(玉)으로써 만들고, 상공(上公)은 옥으로써 용수(龍首)만을 만들고, 후(侯)는 다만 옥으로써 찬(瓚)만을 만들고, 백(伯)은 다만 옥(玉)으로써 장(將)만을 만드니, 장(將)은 자루[柄]이다. 『문헌통고(文獻通考)』에 이르기를, “송(宋)나라 대관(大觀) 4년에 의례국(議禮局)에서 말하기를, ‘지금 태묘(太廟)에 황제께서 친히 제사지내는 데 도금(塗金)한 은찬(銀瓚)을 사용하고, 유사(有司)가 행사(行事)할 적에는 동찬(銅瓚)을 사용하니, 그 대소(大小)와 장단(長短)의 제도가 모두 예(禮)와 같지 않습니다. 청컨대, 제도를 고쳐서 옛날의 제도에 따르게 하소서.’ 하였다”고 하였다. 周禮圖云玉人祼圭尺有二寸有瓚以祀廟注謂祼始獻納以降神也瓚如槃其柄用圭有流箭注焉玉人云射四寸厚寸黃金勺靑金外朱中鼻寸衡四寸有繅注云射郯出者也勺鼻流也流爲龍口衡謂勺徑也祼器天子全以玉爲之上公以玉爲龍首侯惟以玉爲瓚伯惟以玉爲將將柄也文獻通考云宋大觀四年議禮局言今親祀太廟以塗金銀瓚有司行事以銅鑽其大小長短之制皆不如禮請改制以應古制 [5] | 국사편찬위원회[4] |
국조상례보편_찬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찬(瓚)[강신제[祼] 때 울창주[鬯]를 올리는 것이다]. 찬(瓚)[『의궤(儀軌)』에는 무게가 3斤 12兩으로 되어있다]은 국자의 원지름은 8寸, 깊이는 2寸, 자루의 길이는 9寸이다. 사(射)의 길이는 4寸[사(射)는 위를 깎아서 비스듬히 뾰족하게 하는 것이다], 두께는 1寸, 너비는 1寸 5分이다. 용두(龍頭)의 길이는 3寸 2分, 높이는 국자로부터 1寸이다. 瓉[所以祼鬯者]瓉[儀軌重三斤十二兩]勺圓徑八寸深二寸柄長九寸射四寸[射剡上斜銳也]厚一寸博寸五分龍頭長三寸二分高於勺一寸 [6] | 한국전통지식포탈[5] |
국조상례보편_반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반(盤)[『의궤(儀軌)』에는 무게가 1斤 14兩으로 되어있다]은 입지름이 1尺, 깊이는 1寸, 높이는 2寸, 발지름은 8寸이다. 盤[儀軌重一斤十四兩]口圓徑一尺深一寸高二寸足徑八寸 [7] | 한국전통지식포탈[6] |
대한예전_찬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周禮)』에 말하기를, “찬(瓚)의 자루를 천자(天子)는 규(圭)로 만드는데, 길이가 1尺 2寸이요, 모는 4寸이다. [모는 위를 깎아서 모나고 뾰족하게 한다.] 두께는 1寸이요, 너비는 3寸이다.”라고 했다. 또 말하기를, “비(鼻)는 1寸이다.”라고 하고, 『주(註)』에 비(鼻)는 용두(龍頭)를 말하는 것인데, 그 높이는 1寸이라 했다. [작(勺)보다 1寸이 높다.] ○ 한(漢)의 제도에 작(勺)의 지름[徑]은 8寸이요, 깊이는 2寸이다. ○『문헌통고(文獻通考)』에 말하기를, “지금 친히 태묘(太廟)에 제사지내는 데는 금은(金銀)을 칠한 찬(瓚)으로 하고, 유사(有司)가 행사(行事)하는 데는 동찬(銅瓚)으로 한다. 지금 친히 종묘(宗廟)에 제사 지내는 데에는 은찬(銀瓚)을 쓰고, 섭사(攝事)에는 동찬(銅瓚)을 쓴다.”라고 했다. 周禮云瓚柄天子以圭爲柄長尺二寸射四寸[射剡上斜銳之也]厚寸博三寸又云鼻寸注鼻謂龍頭其高寸[高於勺一寸也]漢制勺徑八寸湥二寸○文獻通考云今親祀太廟以塗金銀瓚有司行事以銅瓚今親享用銀瓚攝事用銅瓚 [8] | 한국전통지식포탈[7] |
대한예전_찬반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周禮)』 전서주(典瑞注)에 말하기를, “찬(瓚) 밑에 반(盤)이 있는데, 입지름이 1尺이다.”라고 했다. 섭숭의(攝崇義)가 말하기를, “깊이가 1寸, 발지름이 8寸, 높이가 2寸이다.”라고 하였다. 周禮典瑞注云瓚下有盤口徑一尺聶崇義云宜湥一寸足徑八寸高二寸 [9] | 한국전통지식포탈[8] |
종묘의궤_찬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상공(上公)의 장찬(璋瓚)은 자루[柄]와 용머리[龍首]를 옥으로 만든다.또 이르기를, “찬(瓚)의 자루를 천자(天子)는 규(圭)로 만드는데, 길이가 1尺 2寸이요, 모는 4寸이다. [모는 위를 깎아서 모나고 뾰족하게 한다.] 두께는 1寸이요, 넓이는 3寸이다.제후는 장(璋)으로 자루를 만드는데[규의 반을 장이라 한다.] 길이는 9寸이고, 모는 4寸, 두께는 1寸, 넓이는 1寸 5分이다. 또이르기를, 비(鼻)는 1寸이다. 주(注)에, “비(鼻)는 용두(龍頭)를 말하니, 높이가 1寸이다.”하였다. [작(勺)보다 1寸 더 높다.] 이르기를, 비(鼻)는 1寸이다. 주(注)에, “비(鼻)는 용두(龍頭)를 말하니, 높이가 1寸이다.”하였다. [작(勺)보다 1寸 더 높다.]『주례(周禮)』의 주에 수구(水口)가 있어 앞으로 따른다.”고 하였고, 또“비는 작의 수구이니, 대체로 수구는 모두 용의 입이 된다.”고 하였다. ○ 한(漢)나라의 제도에, 작의 지름은 8치이고, 깊이는 2치이다. ○『문헌통고(文獻通考)』에 이르기를,"지금 태묘(太廟)에 친히 제사를 지낼 때에는 금은을 도금한 찬을 사용하고, 유사(有司)가 제사를 행할 때에는 동찬(銅瓚)을 사용한다."라고 한 것은 지금 종묘에 친히 제향을 올릴 대 은찬(銀瓚)을 사용하고, 신하가 대리로 행할 때 동찬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찬반(瓚盤)도 같다. ○ 자[尺]는 주척(周尺)을 사용한다.] 周禮云上公璋瓚柄及龍首以玉爲之又云瓚柄天子以圭爲柄長尺二寸射四寸[射剡上斜銳之也]厚寸博三寸諸侯以璋爲柄[半圭爲璋]長九寸射四寸厚寸博寸五分又云鼻寸注鼻謂龍頭其高寸[高於勺一寸也]又周禮注云有流前注又云鼻勺流也凡流皆爲龍口也○漢制勺徑八寸深二寸○文獻通考云今親祀太廟以塗金銀瓚有司行事以銅瓚今親享宗廟用銀瓚攝事用銅瓚[瓚盤同○尺用周尺] [10] | 한국전통지식포탈[9] 규장각한국학연구원[10] |
종묘의궤_찬반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주례(周禮)』에 이르기를,"찬(瓚) 아래에 반(盤)이 있는데, 입지름은 1尺이다."라고 하였다.『섭승의(聶崇義)』에 “마땅히 깊이는 1寸이다. 발의 지름은 8寸, 높이는 2寸이다.”고 하였다. 周禮典瑞注云瓚下有盤口徑一尺聶崇義云宜深一寸足徑八寸高二寸 [11] | 한국전통지식포탈[11] |
사직서의궤_찬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항목 없음.[12] | |
사직종묘문묘제기도감의궤_용찬 | 국조오례의_찬 | documents | <사직종묘문묘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주철(鑄鐵)로 만든다. 『주례(周禮)』에 말하기를 "찬(瓚)의 자루 길이는 9寸, 석[射]은 4寸, 두께는 1寸, 너비는 1寸 5分, 코[鼻]는 1寸, 막제작(漠制勺)의 지름은 8寸, 깊이는 2寸이다" 라고 하였다. 『주례(周禮)』에 말하기를 "받침잔[瓚槃] 입지름은 1尺, 깊이는 1寸, 발지름은 8寸, 높이는 2寸 5分이다." 라고 하였다. 『오례의(五禮儀)』에 말하기를 " 종묘(宗廟), 영녕전(永寧殿)의 4계절과 납향제(臘享祭) 때 매 방마다 쟁반을 갖춘 용찬 각각 1개를 준소(尊所)에 설치한다." 라고 하였다. 종묘에는 매 방마다 각각 1개씩 총 10개, 영녕전에는 매 방마다 각각 1개씩 총 6개를 설치한다. 쟁반의 총 무게는 4斤 2兩이다. 鑄鐵周禮瓚柄長九寸射四寸厚寸博寸五分鼻寸漠制勺徑八寸深二寸周禮槃口徑一尺深一寸足徑八寸高二寸五禮儀宗廟永寧殿四時及臘享每室設瓚槃各一於尊所云宗廟每室各一總十永寧殿每室各一總六槃具合重四斤二兩 [13] | 한국전통지식포탈[12] |
경모궁의궤_찬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찬(瓚)은 자루의 길이가 9寸, 석(射)이 4寸, 두께가 1寸, 너비는 1寸 5分이다. 코 부분의 길이가 1寸이다.”라고 하였다. 주(註)에 “코 부분은 용머리[龍頭]를 말하는데 높이가 1寸이다.” 하였다. [작(勺)보다 1寸 더 높다.] 지금은 동찬(銅瓚)을 쓴다. [찬반(瓚槃)도 같다.] 周禮云瓚柄長九寸射四寸厚寸博寸五分又云鼻寸註鼻謂龍頭其高寸[高於勺一寸也]今用銅瓚[瓚盤同] [14] | 한국전통지식포탈[13] 조선후기에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위해 만든 경모궁의 제향 때 사용된 제기이다. 찬(瓚)은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 때 사용하던 술그릇이다. |
경모궁의궤_찬반 | 국조오례의_반 | isRelatedTo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찬반(瓚盤)은 찬 아래에 받침[槃]이 있는데, 입지름이 1尺이다.”라고 하였다. 周禮典瑞註云瓚下有槃口徑一尺 [15] | 한국전통지식포탈[14] 조선후기에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위해 만든 경모궁의 제향 때 사용된 제기이다. 찬반(瓚盤)은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 때 사용하던 술 그릇의 받침이다. |
정조국장도감의궤_용찬대구[16]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3, 삼방 제기질> 한국전통지식포털에서 검색 안 됨. 위키 Encyves 龍瓚臺具 이미지 있음.[17] | AKS Encyves[15] |
순조국장도감의궤_용찬대구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AKS Encyves[16] | |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_용찬대구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AKS Encyves[17]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_찬[18]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AKS Encyves[18] | |
관지통 | 국조오례의_찬 | isRelatedTo | AKS Encyves[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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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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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 | 세종실록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규찬 |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09 | |
도설 | 국조오례의 | 瓚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 |
도설 | 국조오례의 | 瓚盤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 |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규찬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142&category=A&sWord=규찬 | |
참고 | 한국전통지식포탈 | 찬 | https://www.koreantk.com/ktkp2014/search-all/search-by-keyword.page?sl=&&keyword=찬&setId=277342&pageNo=1&target=CRA | |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규찬(圭瓚)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382 | |
참고 | 위키 실록사전 | 규찬(圭瓚)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규찬(圭瓚) | |
참고 | AKS Encyves | 찬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찬 | |
도해 | 세종실록오례 | 규찬 |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7a01.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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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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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
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祭禮와 준․뢰의 사용」, 『조선시대사학보』58, | 조선시대사학회, 2011. | ||
박수정, | 「조선초기 의례(儀禮)제정과 희준(犧尊)·상준(象尊)의 역사적 의미」, 『조선시대사학보』60, | 조선시대사학회, 2012. | ||
최순권, |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
최순권, | 「조선시대 이준(彛尊)에 대한 고찰」, 『생활문물연구』14, | 국립민속박물관, 2004. | ||
정소라, |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 조선시대사학회, 1999. | ||
하은미, |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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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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