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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Definition== 김주국(金柱國, 1710-1771)은 학봉 김성일의 7세손으로 자는 원석(元石),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이상정의 대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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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국|김주국(金柱國, 1710-1771)]]은 학봉 [[김성일]]의 7세손으로 자는 원석(元石),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이상정의 [[대산집|『대산집(大山集)』]]에 따르면 김주국은 어려서부터 호방하고 뜻이 컸으며, 박학하고 글을 잘 지었고, 세속의 흐름이 휩쓸리지 않는 성품을 지녔으며, 좋은 벗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ref>이원배, "[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6JOc_A1710_1_0026045 김주국]",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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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도감의궤|상호도감의궤(上號都監儀軌)]]는 1772년(영조 48) 영조의 성수 79세를 맞아 조선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이를 기념하여 존호를 올린 사실을 기록하였다. 경희궁 덕유당에서 진찬을 받고, 중추부와 도총부·기로소·종친부에서 차례로 진찬을 받았다. 9월 13일의 영조 생일과 26일의 세제 책봉 기념일을 맞았으나, 전자는 그냥 넘어가고 후자에는 창의궁에서 하례를 받았다. 또 존호 가상의 간청을 마지못해 허락하고, 현종·명성왕후·정성왕후·정순왕후가 함께 받도록 하였다. 이에 현종은 소휴연경돈덕수성(昭休衍慶敦德綏成), 명성왕후는 희인(禧仁), 영조는 대성광운개태기영(大成廣運開泰基永), 정성왕후는 공익(恭翼), 정순왕후는 예순(睿順)으로 정했다. <ref>.</ref>

2020년 10월 5일 (월) 12:44 기준 최신판

Definition

상호도감의궤(上號都監儀軌)는 1772년(영조 48) 영조의 성수 79세를 맞아 조선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이를 기념하여 존호를 올린 사실을 기록하였다. 경희궁 덕유당에서 진찬을 받고, 중추부와 도총부·기로소·종친부에서 차례로 진찬을 받았다. 9월 13일의 영조 생일과 26일의 세제 책봉 기념일을 맞았으나, 전자는 그냥 넘어가고 후자에는 창의궁에서 하례를 받았다. 또 존호 가상의 간청을 마지못해 허락하고, 현종·명성왕후·정성왕후·정순왕후가 함께 받도록 하였다. 이에 현종은 소휴연경돈덕수성(昭休衍慶敦德綏成), 명성왕후는 희인(禧仁), 영조는 대성광운개태기영(大成廣運開泰基永), 정성왕후는 공익(恭翼), 정순왕후는 예순(睿順)으로 정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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