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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조상례보편|『국조상례보편』]] || [[용작]] || [[documents]]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용작(龍勺)[[]을 뜨는 것이다]. ()의 무게는 1斤이다[『의궤(儀軌)』에는 1斤 4兩으로 되어 있다]. 입구의 길이는 2寸 8分, 너비는 2寸 1分, 깊이는 1寸 1分이다. 자루[柄]의 길이는 1尺 2寸 9分이다. 자루[]의 끝에는 용머리[龍頭]를 설치한다. 龍勺[所以酌酒者]勺重一斤[儀軌一斤四兩]口長二寸八分濶二寸一分深寸一分柄長尺二寸九分柄端設龍頭 <ref>[https://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1893 한국전통지식포털.]</ref> ||<html><img width="120" src="https://www.koreantk.com/ktkp2014/craft/image/shape/ktc001893/1200x1200/ratio/ktc001893-200/jpg.imag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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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3일 (토) 21:28 판

Definition

국가 제사 의례에 사용된 제기(祭器) 중 하나로 술이나 물을 뜰 때 사용하는 국자. [1] 세종실록오례 ◎ 용작(龍勺) :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용작(龍勺)은 무게가 1근이요, 작구(勺口)의 직경(直徑) 너비가 2촌 1푼이며, 길이는 2촌 8푼이요, 깊이는 1촌 1푼이며, 자루의 길이는 1척 2촌 9푼이다. 작헌(酌獻)과 관세(盥洗)에 모두 용작(龍勺)으로써 떠낸다."고 하였다. ◎ 龍勺 : 《釋奠儀》云: "龍勺, 重一斤, 勺口徑闊二寸一分, 長二寸八分, 深一寸一分, 柄長一尺二寸九分。 酌獻盥洗, 皆以勺挹之。"[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class groupName partName label hangeul hanja english infoUrl iconUrl
세뢰 Object 물품 제기 세뢰(洗罍) 세뢰 洗罍 ritual vessel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세뢰


국사편찬위원회[1]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value
id 세뢰
이칭/별칭
재질
색상
사용 신분 국가제사, 왕실제사

Contextu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image
『세종실록오례』 세뢰 documents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세뢰(洗罍)는 무게가 12斤, 발[足]까지의 전체 높이가 1尺이며, 입지름이 8寸 4分, 길이는 7寸 1分, 굽지름이 7寸 9分이다.”고 하였다. 釋奠儀云洗罍重一十二斤通足高一尺口徑八寸四分深七寸一分足口徑七寸九分 [3]
국사편찬위원회[2]
『국조오례의』 세뢰 documents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세뢰(洗罍)의 무게가 12斤이요, 발까지 합하여 높이는 1尺이다. 입지름[口徑]은 8寸 4分이요, 깊이는 7寸 1分이며, 발의 지름[足徑]은 7寸 9分이다.” 했다. ○『운회(韻會)』에 보면, “뇌(罍)는 세수하는 그릇인데, 구름과 우뢰의 모양을 그린 것은 그 천둥의 위엄을 나타내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한 것이다.” 했다. 釋奠儀云洗罍重一十二斤通足高一尺口徑八寸四分深七寸一分足口徑七寸九分○韻會罍盥器畫爲雲雷之象取其雷震之威以起敬也 [4]
『국조상례보편』 세뢰 documents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세뢰(洗礨)[세수대야 물[盥水]을 담는 것이다]. 세뢰(洗礨)의 무게는 12斤이다[『의궤(儀軌)』에는 20斤으로 되어 있다]. 입지름은 8寸 4分, 배지름은 1尺 2分, 깊이는 7寸 1分이다. 발지름은 7寸 9分, 족부까지 포함한 높이는 1尺이다. 洗礨[所以盛盥水者]洗罍重十二斤[儀軌二十斤]口圓徑八寸四分腰圓徑尺二分深七寸一分足徑七寸九分通足高一尺 [5]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세뢰(洗礨)는 조선시대 왕실의 제사 때 세수대야 물[盥水]을 담는 그릇이다.
『대한예전』 세뢰 documents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세뢰(洗罍)의 무게가 12斤, 발까지 합하여 높이는 1尺이다. 입지름은 8寸 4分, 깊이는 7寸 1分, 발지름은 7寸 9分이다.”라고 했다. ○『운회(韻會)』에 보면, “뇌(罍)는 세수하는 그릇인데, 구름과 우뢰의 모양을 그린 것은 그 천둥의 위엄을 나타내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釋奠儀云洗罍重一十二斤通足高一尺口徑八寸四分湥七寸一分足口徑七寸九分○韻會罍盥器畫爲雲雷之象取其雷震之威以起敬也 [6]
『종묘의궤』 용작 documents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용작(龍勺)의 무게는 1斤이다. 국자 입지름은 너비가 2寸 1分, 길이 2寸 8分이며, 깊이는 1寸 1分이다. 자루의 길이는 1尺 2寸 9分이다. 작헌(酌獻)할 때와 관세(盥洗)할 때에 모두 국자로 뜬다. 釋奠儀云龍勺重一斤勺口徑闊二寸一分長二寸八分深一寸一分柄長一尺二寸九分酌獻盥洗皆以勺挹之 [7]
규장각한국학연구원[3]
『사직서의궤』[8] 용작 documents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용작(龍勺)은 무게가 2斤이요, 작구(勺口)의 지름은 2寸 1分, 길이는 2寸 8分이다. 깊이는 1寸 1分, 자루의 길이는 1尺 2寸 9分이다. 작헌(酌獻)과 관세(盥洗)에 모두 작(勺)으로 떠서 쓴다.”라고 했다. 釋奠儀云龍勺重一斤口徑闊二寸一分長二寸八分㴱一寸一分柄長一尺二寸九分爲龍頭酌獻盥洗皆以勺挹之 [9]
1783년(정조 7) 1월 8일에 사직서(社稷署)의 제례의식[祭儀]제식(祭式)·단(壇)·유(壝)·관사(館舍) 등을 참고하고자 작성된 5권 3책의 의궤가 편찬되어, 1804년(순조 4) 1차 증보되고, 1842년(현종 8) 2차 증보됨./ 조선후기 정조나 순조 때 사직에서 왕실의 제사에 물이나 술을 뜨는 국자이다.
『제기도감의궤』[10] 용작 documents <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주조하며 154개이다. 입 지름 너비 2寸 1分, 길이 2寸 8分, 깊이 1寸 1分, 자루[柄]의 길이 1尺 2寸 9分이다. 사직(社稷) 20개, 영녕전(永寧殿) 51개, 종묘(宗廟) 57개, 각 능에 26개이다. 鑄一百五十四口徑闊二寸一分長二寸八分深一寸一分柄長一尺二寸九分社稷二十永寧殿五十一宗廟五十七各陵二十六 [11]
1611년(광해군 3) 8월 24일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에 친제(親祭)를 거행하기 위해 제기가 부족하자, 그해 9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듬해까지 제기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제기를 만든 전말을 기록하고 있음./ 용작(龍勺)은 술을 뜨는 국자이다. 사직(社稷) 20개, 영녕전(永寧殿) 51개, 종묘(宗廟) 57개, 왕릉에 26개의 용작을 만들어 사용한다.
『경모궁의궤』 용작 documents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용작(龍勺)은 무게가 1斤, 작구(勺口)의 지름과 너비가 2寸 1分, 길이는 2寸 8分, 깊이는 1寸 1分, 자루의 길이는 1尺 2寸 9分이다. 용두(龍頭)를 단다. 작헌(酌獻)할 때에 사용하며, 준(樽)마다 각각 하나씩 있다.”라고 하였다. 釋奠儀云龍勺重一斤口徑闊二寸一分長二寸八分深一寸一分柄長一尺二寸九分爲龍頭酌獻用之每樽各加一 [12]
『정조국장도감의궤』[13] 용작 documents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4, 별공작> 용작(龍勺) 3箇는 합한 무게 3斤 15兩이다. 이상은 순놋쇠[純鍮]이다. 龍勺三箇合重三斤十五兩以上純鍮 [14]
조선후기 1800년(순조 즉위년) 정조(正祖)의 국장(國葬) 때, 용작(龍勺)은 술을 뜨는 국자로 사용하였다.
용작 국립고궁박물관[15] currentLocation < 국립고궁박물관, 유물도판출처:궁중유물전시관, 『종묘대제문물』, 2004, p.42.> [16]
한국전통지식포털[4]
용작 성균관 currentLocation <제기/용작. 석전제의 제기. 용작(술을 뜨는 국자). 성균관 소장.(ⓒ한국학중앙연구원, 유남해)> [17]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용작(龍勺) 희준(犧尊)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A ekc:goesWith B
용작(龍勺) 상준(象尊)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A ekc:goesWith B
용작(龍勺) 착준(著尊)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A ekc:goesWith B
용작(龍勺) 호준(壺尊)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A ekc:goesWith B
용작(龍勺) 대준(大尊)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A ekc:goesWith B
용작(龍勺) 세뢰(洗罍)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A ekc:goesWith B
용작(龍勺) 『종묘의궤(宗廟儀軌)』 B는 A에 그려져 있다 B ekc:isDepictedIn A
용작(龍勺)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宗廟親祭規制圖說屛風)》 B는 A에 그려져 있다 B ekc:isDepictedIn A
용작(龍勺) 『순조국장도감의궤(純祖國葬都監儀軌)』 B는 A에 그려져 있다 B ekc:isDepictedIn A
용작(龍勺) 『정조국장도감의궤(正祖國葬都監儀軌)』 B는 A에 그려져 있다 B ekc:isDepictedIn A
용작(龍勺)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孝懿王后國葬都監儀軌)』 B는 A에 그려져 있다 B ekc:isDepictedIn A
용작(龍勺) 제례(祭禮) A는 B에 사용되었다 A ekc:isUsedIn B

Spatial Data

Spactial Information Nodes

gid region label hanja latitude longitude altitue description

Spati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Temporal Data

Temporal Information Nodes

tid timeSpan label hanja lunarDate solarDate indexDate description

Tempor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Online Reference

type resource title desctription/caption URL
도설 세종실록오례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용작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23
도설 국조오례의 龍勺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참고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용작龍勺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910&category=A&sWord=용작
참고 한국전통지식포탈 용작 https://www.koreantk.com/ktkp2014/search-all/search-by-keyword.page?pageNo=1&pageSize=&keyword=용작&target=CRA
참고 조선왕조실록사전 용작(龍勺)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383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기/용작 http://encykorea.aks.ac.kr
참고 위키 실록사전 산준(山尊)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용작(龍勺)
참고 위키 Encyves 한국 기록유산 용작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용작
도해 세종실록 오례 용작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8b03.jpg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title publication edition URL
박봉주,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하은미,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최순권,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궁중유물전시관, 2004.
정소라,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조선시대사학회, 1999.
김종일,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김종임,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한국미술사학회, 2013.
손명희,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이귀영,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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