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후손들이 꿈꾼 고구려 부흥의 꿈, 고려

Korea100
이동: 둘러보기, 검색
Eng icon.JPG


용의 후손들이 꿈꾼 고구려 부흥의 꿈, 고려

후삼국 평정으로 한반도 통일

고려는 통일신라 말기 내부적 분열과 혼란한 정세 속에서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에 이어 등장하였다.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싼 왕실의 혼란은 지방 사회의 분열과 반란으로 이어졌다. 이에 각각 궁예가 세운 북부의 후고구려, 견훤이 세운 남서부의 후백제가 출현하며 다시금 후삼국으로 분열하게 되었다. 이 중 개성 지역의 유력한 호족의 후원을 받았던 궁예는 개성에 도읍을 두고 후고구려를 세우며 고구려의 회복을 주창하였다.

그러나 궁예가 점차 포악해지고 민심에서 멀어지자 역시 개성의 유력한 호족인 왕건은 918년 궁예를 몰아내고 새롭게 고려를 건국하여 고구려를 계승한 강성한 나라를 만들 것을 선언한다. 태조 왕건후백제를 정복하고, 신라에게 항복을 받아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이미 926년 발해가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이 지속적으로 고려에 귀화하고 있었으므로, 이 때 고려의 통일은 명실공히 민족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강력한 국가 기반 확립

태조 왕건은 북진정책을 내세워 고구려의 옛 땅을 향해 영토를 확장하였고, 평양을 또 하나의 수도로 격상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하였다. 한편으로는 오랜 분열 속의 후삼국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 유력 호족 가문과 직접 혼인함으로써 견고한 유대감을 조성하였다. 또 「훈요십조(訓要十條)」를 남겨 후대 왕들이 통치에 활용할 왕실의 전범을 마련하며 기틀을 다졌다. 이어 광종은 지방에서 독립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모든 호족들을 제거하고 강력한 왕권과 통치제도를 확립하였다.

이로써 고려는 국왕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할 수 있었다. 나아가 역사상 최초로 과거제도를 시행하여 관료제도를 구축하면서 스스로 연호를 사용하고 황제를 칭하기도 하였다.

이후 성종이 즉위하면서 유학을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현종 대에는 전국에 군현을 설치하고 여기에 지방관리를 파견하여 모든 영역을 중앙에서 국왕이 통제하는 국가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중앙집권적 통치제도를 발전시켜 나간 고려는 문종 대에 이르러서는 화려하고 성대한 문화의 최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거란과 여진의 잦은 침략

그러나 10세기 후반 이후 고려는 외부로부터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북쪽 국경을 마주하고 있던 거란족이 요(遼)나라를 세운 뒤 고려를 압박하면서 크게 3차례나 침략하였다. 거란은 고려가 중국 송(宋)나라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서희(徐熙, 942~998)의 외교적 담판으로 전쟁 없이 물리쳐내기도 하였지만, 거듭된 침략으로 한때 수도인 개성을 함락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강감찬(姜邯贊, 948~1031)이 활약한 귀주대첩의 승리로 거란을 끝내 물리쳐낸 고려는 이후 수도 개성을 둘러싼 성벽을 축조하면서 다시금 외침에 대비하였다.

하지만 위기는 다시 이어졌다. 11세기 거란을 물리치고 등장한 여진은 금(金)나라를 세운 뒤 고려에 쳐들어왔다. 여진과의 위기는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내용으로 강화를 체결하면서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로써 고려는 송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여진에게 조공을 바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무신정권의 등장과 몰락

이 과정에서 내부적으로는 정변도 겪어야만 했다. 1170년, 건국 이래로 문신과는 현저히 다른 차별에 불만이 쌓여있던 무신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왕과 문신 귀족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았다. 이른바 무신정권의 등장이었다. 무신정권은 이후 1270년 몰락할 때까지 약 100년 동안 무신들로 이어가면서 권력을 독점하였다.

무신정권이 몰락하게 된 계기는 바로 몽고의 침략이었다. 초원에서 급격하게 성장한 뒤 이미 거란여진, 그리고 송나라를 멸망시키며 강성해진 몽고는 1231년부터 고려를 침공하기 시작하였다. 총 9차례에 걸쳐 이뤄진 몽고의 침입은 고려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며 결국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항전하던 무신정권까지도 몰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몽고에 대한 저항과 굴욕

몽고의 침략 속에서도 항전을 계속하였던 고려는 끝내 몽고와 강화를 체결하게 되었다. 그제야 본래 수도인 개성으로 환도할 수 있었고, 그 대가로 고려는 몽고, 즉 원나라의 영향력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려의 왕자는 원나라 황실의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자연히 사위의 나라, 즉 부마국으로 전락하였다. 또 대대로 황제국의 지위로 운영되던 고려의 행정 조직은 한 단계 격하되면서 일정부분 내정간섭까지도 감수하여야 했다.

14세기 중엽 공민왕의 즉위를 계기로 대대적인 반원운동과 고려의 자주정책이 추진되었다. 공민왕은 원나라 내부에서 반란이 속출하여 원의 내정이 혼란한 틈을 타 고려 안에 있는 친원파들을 숙청하고 몽고의 풍습을 타파하는 등 강력한 자주정책을 펼쳤다. 원나라가 편입해간 북방의 영토를 회복시키는가 하면 친원파들이 착취해간 대규모의 토지를 백성들에게 되돌려 주는 등 적극적인 개혁정책들을 펼치게 되었다.

새로운 국면, 새로운 인물

그 결과 고려몽고의 잔재는 어느 정도 청산되었으며, 왕실의 전통적인 통치 질서 역시 다소 회복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공민왕이 갑작스럽게 암살되어 죽고 그 뒤를 이은 우왕이 원나라가 명나라에 쫓겨 남기고 간 요동 지역을 정벌하려 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강력한 무신 가운데 하나였던 이성계(李成桂, 1335~1408)는 요동정벌에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위화도회군’으로 권력을 잡았다. 이후 고려의 실권은 무신인 이성계에게 넘어가고 끝내 1392년 고려의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바로 조선의 개창이었다. 이성계조선의 왕으로 등극하면서 고려 왕조는 474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막을 내린다.

고려가 이룩한 업적들

고려불교를 국교로 하면서 통치의 이념으로써 유학을 적극 수용했던 나라였다. 한국의 역사상 과거제도를 처음 시행한 나라가 바로 고려이며, 과거제도는 바로 유학적 소양에 대한 시험으로 우수한 인물을 뽑아 관리로 등용했던 제도였다. 과거제도를 통해 왕과 관리들이 국가를 통치하고 운영하는 지배계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관료제도를 안착시킨 것은 고려의 역사적 업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이다.

특히 14세기에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 하에 있었지만, 두 나라 지배층과 학자들은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그에 따라 고려의 유학자들은 원나라에서 장기간 거주하면서 새로이 융성하기 시작한 성리학(Neo-Confucianism)을 배우고 원나라에서 시행한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이들이 고려에 돌아와 성리학을 보급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신흥사대부’ 계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은 성리학의 새로운 이념을 바탕으로 사회 개혁을 추진하였고, 무장 세력인 이성계 일파와 연합하여 고려를 타도하고 조선 왕조를 세우게 되었다.

고려의 문화융성

고려는 주변국들의 잦은 침략과 몽고의 강력한 공습에도 불굴의 정신으로 자주성을 지켜 나갔다. 화려한 귀족 문화를 꽃피우며 고려청자금속활자, 팔만대장경과 같은 인쇄술을 발전시켰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조판하였다는 것은 고려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업적이다.

특히 개성 아래 예성강 하류에 있던 벽란도라는 항구를 통해 멀리 아라비아 상인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외국의 상인과 활발히 교역하였다. 고려는 현재 한국을 지칭하는 ‘코리아’의 어원이 될 만큼 우리 역사에 견고한 뿌리와 자양분을 제공해주고 있다.

관련항목

참고문헌

  • 고려 호족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재범, 『고려 건국기 사회동향 연구』, 경인문화사, 2010.
김창현, 『광종의 제국』, 푸른역사, 2008.
신호철, 『후삼국시대 호족연구』, 개신, 2002.
박경자, 『고려시대 향리연구』, 국학자료원, 2001.


『고려 건국기 사회동향 연구』는 후삼국에서부터 고려 건국 시기 호족의 동향과 그 활동의 내용을 깊이 분석한 연구서이다. 저자는 고려의 사회적 동향이라는 거시적 시야 속에서 호족의 존재와 역할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호족의 존재는 후삼국 시기 출현해 고려 초기를 거쳐 광종 이후 향리로 변모해가고 있는데, 이 연구는 이 가운데 고려 초기 존재 양상을 설명함으로써 그 이해를 돕고 있다.

『광종의 제국』은 고려 정치사에서 왕권과 호족세력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했던 광종대 정국의 동향과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고려가 건국되는 과정에서부터 호족이 정국에 참여하는 면면들을 살펴보고, 본격적으로 광종이 어떻게 호족들을 제거해가는지 그 전개 내용을 상세히 정리하였다. 또 왕권 강화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던 균여와 탄문에 이르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함께 전해주고 있는데, 대중서와 같이 편하고 유려하게 서술된 문체로 깊이 있는 고려 정국의 모습을 접할 수 있어 주목된다.

『후삼국시대 호족연구』는 후삼국에서 고려에 이르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사회의 지배계층으로 활동했던 호족의 존재와 실체를 기존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여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후삼국시대 출현했던 호족의 개념과 인식에 대한 기존 학계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였다. 또 중앙차원에서 호족이 귀족으로, 지방사회에서 호족이 이족 혹은 향리로 변천되는 과정 역시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고려 사회에서 호족의 존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향리연구』는 고려시대 향리의 기원은 후삼국시대 호족이었으므로, 고려의 중앙정치가 국왕 중심으로 재편된 이후 고려의 지방사회에서 향리의 성격과 실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정밀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특히 고려시대 향리제도의 성립부터 그 직임, 경제적 기반과 이후 신분의 변화 양상 등 향리의 존재를 세분화하여 분석하고 그 의미의 도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 책은 고려의 왕권과 통치제도가 자리를 잡은 이후의 향리의 존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무신정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Shultz, Edward J., 『무신과 문신 : 한국 중세의 무신정권』, 글항아리, 2014.
강재광, 『몽고침입에 대한 최씨정권의 외교적 대응』, 경인문화사, 2011.
김호동, 『고려 무신정권시대 문인지식층의 현실대응』, 경인문화사, 2005.


『무신과 문신』은 고려 중기 무신정권의 면면들을 상세하게 집대성하여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오랜 기간 외국인의 눈으로 한국사를 바라본 저자가 고려 정치사의 큰 전환기를 제공해 준 무신의 발호와 정권 장악 및 행사의 전 과정을 꼼꼼하게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저자는 자신의 견해와 해석을 제시하기보다는 정확한 사실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려 정치사의 정확한 사실 문제를 습득하고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몽고침입에 대한 최씨정권의 외교적 대응』은 고려시대 대내외적 위기가 중첩되었던 시기인 몽고침략시기 몽고의 침략 양상과 무신정권의 대응 전반을 망라하여 종합 정리하고 있는 책이다. 당시 끊임 없는 몽고의 압력 속에서도 항전을 이어 나갔던 무신정권 실력자 최씨 정권의 실체와 면면들을 살펴봄으로써 민족의 대외적 위기 상황 속에서 권력의 주체인 무신정권이 어떠한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그 이해를 돕기에 충분한 책이다.

『고려 무신정권시대 문인지식층의 현실대응』은 고려 무신정권 시대 문인지식인층의 존재 양상과 특징을 정리하고 있다. 무신정권 시대는 무신들이 무력을 중심으로 문인들을 정치에서 철저하게 배제했던 특이한 시대였으므로, 이 시기 문신계열 문인들의 처우와 존재 양상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고려 무신정권의 특징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 고려 불교와 유학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안지원, 『고려의 불교의례와 문화 : 연등·팔관회와 제석도량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1.
황인규, 『고려시대 불교계와 불교문화』, 국학자료원, 2011.
고혜령, 『고려후기 사대부와 성리학 수용』, 일조각, 2002.


『고려의 불교의례와 문화』는 고려시대 국가 차원에서의 불교 의례와 그 성격을 밝히는 책이다. 특히 연등과 팔관회는 왕실과 국가차원에서 시행되었던 매우 중요한 의례였던 만큼 고려 불교의 성격뿐만 아니라 그 정치적 의미, 나아가 사회적 성격까지 망라하여 정리하고 있어 왕실 불교의 역할과 의미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제공해 줄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시대 불교계와 불교문화』는 고려의 정신세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를 시계열적으로 매우 정밀하게 정리하여 분석하고 있다. 고려 건국기 비보와 도참적 성격의 불교에서 교종과 선종의 중층적인 수용의 양상, 중국 불교계와의 교류를 통한 새로운 종파의 출현 등 고려 불교의 발전과 전개 양상을 상세히 소개하였다. 고려 중기까지 고려 불교의 면면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후기 사대부와 성리학 수용』은 불교에서 성리학으로 이동하면서 고려의 사상사적 전환점이 되는 고려 후기 사회의 사상적 동향을 정리하고 소개하는 책이다. 원나라의 영향력에 놓여 있던 고려가 대륙의 사상적 흐름에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성리학을 수용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고려 안에 새로운 사회 계층으로 사대부가 출현해 정치세력화하는 과정을 정밀하게 다루었다. 또 사대부들의 정치적 진출 양상과 그들의 사상적 특징, 원나라의 문인들과의 교류 양상 등 다채로운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