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만동묘

Encyves Wiki
류인태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8년 1월 4일 (목) 17:42 판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괴산 만동묘
(槐山 萬東廟)
풍영섭, "만동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괴산 만동묘
한자표기 槐山 萬東廟
유형 유적
시대 조선시대
지정번호 충청북도 시도기념물 제25호
지정일 1978년 10월 27일
소장처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정의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에 있는 사당이다.

내용

괴산 만동묘의 유래

조선 중기의 문신 민정중(閔鼎重)이 북경에 사신으로 갔다가 명나라 의종(毅宗)의 친필인 ‘비례부동(非禮不動)’의 넉 자를 얻어다가 송시열(宋時烈)에게 주었다. 1674년(현종 15) 송시열은 이것을 화양리에 있는 절벽에 새기고 그 원본은 환장암(煥章庵 : 현재의 彩雲庵) 옆에 운한각(雲漢閣)을 지어 보관하고, 그곳 승려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또한 김수항(金壽恒)은 장편의 글을 지어 그 일을 기록하였다. 1689년(숙종 15) 송시열이 사사(賜死)될 때 명나라 신종의종의 사당을 세워 제사지낼 것을 그의 제자인 권상하(權尙夏)에게 유명(遺命)으로 부탁하였다. 권상하는 이에 따라 1703년 민정중·정호(鄭澔)·이선직(李先稷)과 함께 부근 유생들의 협력을 얻어 만동묘를 창건하고 신종의종의 신위를 봉안하여 제사지냈다. 만동묘라는 이름은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조종암(朝宗巖)에 새겨진 선조의 어필인 ‘만절필동(萬折必東)’을 모본하여 화양리 바위에 새겨놓은 것을 그 첫 글자와 끝 글자에서 취해 지은 것이다.[1]

괴산 만동묘의 구조

만동묘의 건물은 묘우(廟宇) 5칸, 정침(正寢) 3칸, 동·서 협실(夾室) 각 1칸, 성공문(星拱門) 3칸, 좌·우 협문(夾門) 각 1칸, 좌·우 낭(廊) 각 3칸, 신주(神廚) 중 1칸, 동방(東房) 1칸, 서방(西房) 2칸 등으로 운영담(雲影潭) 위쪽, 낙양산(洛陽山) 밑에 북향으로 위치해 있었다. 묘우에는 지패(紙牌)를 봉안하고, 정침과 동·서 협실은 제관의 숙소 또는 유림들의 회합이나 학문 토론 장소로 이용되었다. 신주 중 1칸과 동방 1칸은 제물의 봉진(奉進)에, 서방 2칸은 집사(執事)의 숙소로 각각 쓰였다. 제향은 매년 음력 3월과 9월 상정(上丁)에 봉행되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묘우 및 부속건물은 철거된 채 현재는 빈터로 남아 있으나 1983년 홍수 때 만동묘 묘정비가 출토되어 예전 자리에 다시 세우고 묘역을 재정비하였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명 만력제 신위 괴산 만동묘 A는 B에 있었다 A ekc:formerLocation B
명 숭정제 신위 괴산 만동묘 A는 B에 있었다 A ekc:formerLocation B
괴산 만동묘 창건 괴산 만동묘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송시열 괴산 만동묘 창건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민정중 괴산 만동묘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김수항 괴산 만동묘 창건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권상하 괴산 만동묘 창건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정호 괴산 만동묘 창건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이선직 괴산 만동묘 창건 A는 B에 참여하였다 A edm:isRelatedTo B
송시열 권상하 A는 B의 스승이다 A ekc:hasDisciple B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풍영섭, "만동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풍영섭, "만동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더 읽을 거리

  • 논문
    • 전용우, 「華陽書院과 萬東廟에 대한 一 硏究」, 『역사와 담론』 18, 호서사학회, 1990, 135-176쪽.
  • 웹자원
    • 풍영섭, "만동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