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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3일 (금) 17:04 판

한산이씨 고행록
한자명칭 韓山李氏苦行錄
영문명칭 An autobiography of Madame Yi of Hansan
작자 한산이씨
간행시기 1718년(숙종44)
소장처 진주유씨 모산종택
유형 고문서
크기(세로×가로) 34.0×584.2㎝
판본 필사본
수량 1축
표기문자 한글



개요

1718년(숙종44)에 유명천(柳命天, 1633~1705)의 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 1659~1727)가 60세에 쓴 회고록이다.


내용

1718년(숙종44)에 유명천(柳命天, 1633~1705)의 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 1659~1727)가 60세에 쓴 회고록이다. 유경종(柳慶種, 1714~1784)의 기문에 따르면 한산이씨가 자신의 행적을 자손들에게 남기기 위하여 손수 한글로 쓴 것 이라고 한다.『고행록』에는 한산이씨의 탄생부터 회갑까지의 삶이 오롯이 기록되어 있다. 숙종남인 사대부가의 부인으로서 18세에 정3품 숙부인, 22세에 정2품 정부인, 33세에 정1품 정경부인에 이르렀으나, 정치적 환국에 휘말린 남편을 따라 각지의 유배소를 떠돌며 험난한 삶을 살았던 일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세 번이나 아이를 잃었으나 종통을 잇기 위해 양자를 들였던 일, 시어머니와 남편을 차례로 떠나보내고 47세의 미망인으로 집안을 굳건하게 지켜냈던 일 등을 시간 순으로 기록하였다. 며느리 둘을 잃고 세 번째 며느리에게서 손자를 얻은 뒤 69세에 생을 마쳤다.『고행록』은 한산이씨가 유배와 관련된 정치적 사건은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집안일만 서술했으나, 숙종남인 사대부가의 운명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고행록』은 진주유씨 가문의 가보로서 남다른 방법으로 전승되어왔다. 1925년에 6대손 유원성(柳遠聲, 1851~1945)이 읽고 손부 권태임(權泰妊, 1908~1967)이 받아쓰는 방식으로 전사본을 제작했고, 2012년에는 권태임의 딸 유미형(柳美馨)이 또 다른 전사본을 만들었다. 자손 대대로 읽고 소중히 간직하려는 후손들의 노력이 돋보인다. [1]


관련항목

중심 연결정보 대상
한산이씨 고행록 인물 유명천
한산이씨 고행록 인물 한산이씨
한산이씨 고행록 인물 유경종
한산이씨 고행록 인물 숙종
한산이씨 고행록 인물 정경부인
한산이씨 고행록 인물 진주유씨
한산이씨 고행록 인물 유원성
한산이씨 고행록 인물 권태임
한산이씨 고행록 인물 유미형
한산이씨 고행록 그룹 남인
한산이씨 고행록 소장처 진주유씨 모산종택

시간정보

중심 시간정보명 시간값
한산이씨 고행록 간행년 1718년
한산이씨 고행록 간행년 숙종44년
한산이씨 고행록 전사본 1925년
한산이씨 고행록 전사본 2012년

공간정보

중심 연결정보 공간정보이름 경도 위도
한산이씨 고행록 소장처 진주유씨 모산종택 37.342468 126.872910

참고문헌

주석

  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