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ncyves 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탑비는 승탑 건립 후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행적을 기록하여 세운 일종의 묘비이다. 승탑과 탑비의 건립은 모든 승려들이 세울 수 있었던...)
 
1번째 줄: 1번째 줄:
탑비는 승탑 건립 후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행적을 기록하여 세운 일종의 묘비이다. 승탑과 탑비의 건립은 모든 승려들이 세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사에 상당하는 예우를 받았거나 그러한 지위에 추증된 승려들에 한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국왕의 허락이 있어야만 건립될 수 있었던 조형물로 추정된다.
+
*탑비는 승탑 건립 후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행적을 기록하여 세운 일종의 묘비이다. 승탑과 탑비의 건립은 모든 승려들이 세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사에 상당하는 예우를 받았거나 그러한 지위에 추증된 승려들에 한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국왕의 허락이 있어야만 건립될 수 있었던 조형물로 추정된다.
--- 정성권,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보는 또 다른 시각 -미술사와 고고학을 통하여, 동양학, 2015.
 
  
 +
--- 정성권,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보는 또 다른 시각 -미술사와 고고학을 통하여, 동양학, 2015, 166쪽.
 +
 +
*탑비는 승려에게 시호와 탑호가 왕에 의해 하사되어야만 작성될 수 있었다. 고려 건국 직후 탑비를 본격적으로 조성하게 된 이유는 시호와 탑호를 내리는 왕이 신라의 왕이 아니라 새로운 통일왕조 고려의 왕임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전수단의 하나로 이용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
--- 정성권,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보는 또 다른 시각 -미술사와 고고학을 통하여, 동양학, 2015, 170쪽.
  
  
 
[[분류:불교 사찰의 승탑비문]]
 
[[분류:불교 사찰의 승탑비문]]

2017년 6월 16일 (금) 16:35 판

  • 탑비는 승탑 건립 후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행적을 기록하여 세운 일종의 묘비이다. 승탑과 탑비의 건립은 모든 승려들이 세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사에 상당하는 예우를 받았거나 그러한 지위에 추증된 승려들에 한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국왕의 허락이 있어야만 건립될 수 있었던 조형물로 추정된다.

--- 정성권,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보는 또 다른 시각 -미술사와 고고학을 통하여, 동양학, 2015, 166쪽.

  • 탑비는 승려에게 시호와 탑호가 왕에 의해 하사되어야만 작성될 수 있었다. 고려 건국 직후 탑비를 본격적으로 조성하게 된 이유는 시호와 탑호를 내리는 왕이 신라의 왕이 아니라 새로운 통일왕조 고려의 왕임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전수단의 하나로 이용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정성권,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보는 또 다른 시각 -미술사와 고고학을 통하여, 동양학, 2015, 1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