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기록화관 개관

"정창섭-인천항제2도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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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은 조석간만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갑문식 도크]]를 설치하였는데, 조석간만의 차가 심한 항만에서 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수위를 조정하기 위한 구조물을 [[갑문]]이라 한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25272docId=1056757&cid=40942&categoryId=32191 갑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 온라인 서비스』<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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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은 조석간만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갑문식 도크]]를 설치하였는데, 조석간만의 차가 심한 항만에서 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수위를 조정하기 위한 구조물을 [[갑문]]이라 한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25272docId=1056757&cid=40942&categoryId=32191 갑문]",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 온라인 서비스』<sup>online</sup></online></html>, 두산백과.</ref> [[갑문식 도크]]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인(세계 5위) [[인천항 도크]]는 [[인천항 제1도크]]와 [[인천항 제2도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189억원이 투자되었고, 300만 명의 인부가 동원된 [[인천항 제2도크]]의 완공에 따라, 대형 선박 25척이 부두까지 들어와 하역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인천항에서 조수간만의 차에 구애받지 않고 대형 선박 출입 가능하게 되었다.<br/>
 
해당 작품의 소재는 [[인천항 제2도크]]로, 작품 오른편에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묘사되어 있는데, 실제로 [[인천항 제2도크]]에는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 간만큼의 콘크리트가 사용되었다고 한다.<ref>정경숙, "[http://goodmorning.incheon.go.kr/board/54/1911979?curPage=&codeNm=2015/07&codeText=%EA%B9%8C%EC%B9%98%EB%B0%9C%EB%A1%9C%20%EB%B3%B8%20%EC%9D%B8%EC%B2%9C 멀어진 바다, 사라진 비린내]", 『굿모닝인천』, 2015년 07월 06일.</ref><br/>
 
해당 작품의 소재는 [[인천항 제2도크]]로, 작품 오른편에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묘사되어 있는데, 실제로 [[인천항 제2도크]]에는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 간만큼의 콘크리트가 사용되었다고 한다.<ref>정경숙, "[http://goodmorning.incheon.go.kr/board/54/1911979?curPage=&codeNm=2015/07&codeText=%EA%B9%8C%EC%B9%98%EB%B0%9C%EB%A1%9C%20%EB%B3%B8%20%EC%9D%B8%EC%B2%9C 멀어진 바다, 사라진 비린내]", 『굿모닝인천』, 2015년 07월 06일.</ref><br/>
 
오른편에는 크레인이 상공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철재 상판 위의 노동자가 묘사되어 있다.<ref>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년, 87-88쪽.</ref>
 
오른편에는 크레인이 상공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철재 상판 위의 노동자가 묘사되어 있다.<ref>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년, 87-88쪽.</ref>

2017년 6월 14일 (수) 04:30 판


인천항제2도크
정창섭-인천항제2도크-1973s.jpg
작가 박항섭
제작연도 1975년
규격 300호(197x290.9cm)
유형 건설/교통
분류 유화
소장처 미상


정의

1966년 6월에 착공하여 1974년 5월 10일에 완공된 인천항 제2도크 공사 장면을 담은 정창섭 화백의 민족기록화.

설명

작품 소재

인천항은 조석간만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갑문식 도크를 설치하였는데, 조석간만의 차가 심한 항만에서 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수위를 조정하기 위한 구조물을 갑문이라 한다.[1] 갑문식 도크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인(세계 5위) 인천항 도크인천항 제1도크인천항 제2도크로 이루어져 있는데, 189억원이 투자되었고, 300만 명의 인부가 동원된 인천항 제2도크의 완공에 따라, 대형 선박 25척이 부두까지 들어와 하역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인천항에서 조수간만의 차에 구애받지 않고 대형 선박 출입 가능하게 되었다.
해당 작품의 소재는 인천항 제2도크로, 작품 오른편에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묘사되어 있는데, 실제로 인천항 제2도크에는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 간만큼의 콘크리트가 사용되었다고 한다.[2]
오른편에는 크레인이 상공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철재 상판 위의 노동자가 묘사되어 있다.[3]

작품 배경

작품의 배경은 인천항이다.

그림 읽기

이성계이오로첩목아오녀산성정창섭 「인천항제2도크」 1973
이 그림에 대한 정보

지식 관계망

추후 제작 및 삽입 예정 임시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정창섭 정창섭-인천항제2도크 A는 B를 그렸다 1973년
정창섭-인천항제2도크 인천항도크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정창섭-인천항제2도크 인천항 제2도크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정창섭-인천항제2도크 인천항 A는 B를 배경으로 한다
인천항도크 인천항 제1도크 A는 B를 포함한다
인천항도크 인천항 제2도크 A는 B를 포함한다
인천항도크 인천항 A는 B에 위치한다
갑문식 도크 인천항도크 A는 B를 포함한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973년 정창섭이 정창섭-인천항제2도크를 제작하였다.

공간정보

위도 경도 내용
37.463812 126.625059 인천항인천항도크가 위치한 곳이다

관련 민족기록화

시각자료

가상현실

추후 제작 및 삽입 예정

갤러리

영상

주석

  1. "갑문", 『두산백과 온라인 서비스』online, 두산백과.
  2. 정경숙, "멀어진 바다, 사라진 비린내", 『굿모닝인천』, 2015년 07월 06일.
  3. 박혜성, 「1960-1970년대 민족기록화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년, 87-88쪽.
  4. "박정희대통령민족기록화전시회개관식참석2", 『국가기록원 기록물뷰어』online, 국가기록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웹자원
    • "인천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작성일: 2014년 03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