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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출신으로 초명은 정지원(鄭之元)이며, 호는 남호(南湖)이다.<ref>민병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0946 정지상]",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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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해, [[김부식|김부식(金富軾)]]을 중심으로 한 유교적·사대적인 성향이 강하던 개경 세력과 대립하였다. 서경을 거점으로 [[묘청|묘청(妙淸)]] 등이 난을 일으키자, 적극 가담해 금나라를 정벌하자고 주장하며 칭제건원(稱帝建元)을 하였다. 그러나 개경 세력의 [[김부식]]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패해 개경에서 참살되었다.<ref>민병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0946 정지상]",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1130년 『산재기(山齋記)』를 지었으며, 뒤에 기거랑(起居郞)이 되었다. 1135년(인종 13) 묘청의 난 때 이에 관련된 혐의로 김안(金安)·백수한과 함께 김부식(金富軾)에게 참살되었다. 시(詩)에 뛰어나 고려 12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역학(易學)·불전(佛典)·노장철학(老莊哲學)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림·글씨에도 능했으며 저서로는 『정사간집(鄭司諫集)』이 있다. [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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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에 뛰어나 고려 열 두 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역학(易學)·불전(佛典)·노장철학(老莊哲學)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림·글씨에도 능했으며 저서로는 『정사간집(鄭司諫集)』이 있다.<ref>"[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58642 정지상]", <html><online style="color:purple">『두산백과』<sup>online</sup></online></htm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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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는 『동문선(東文選)』에 「신설(新雪)」·「향연치어(鄕宴致語)」가, 『동경잡기(東京雜記)』에 「백률사(栢律寺)」·「서루(西樓)」등이 전하며, 『정사간집(鄭司諫集)』·『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등에도 시 몇 수가 실려 있다.<ref>민병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0946 정지상]",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ref>
작품으로는 『동문선(東文選)』에 「신설(新雪)」·「향연치어(鄕宴致語)」가, 『동경잡기(東京雜記)』에 「백률사(栢律寺)」·「서루(西樓)」등이 전하며, 『정사간집(鄭司諫集)』·『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등에도 시 몇 수가 실려 있다.
 
  
 
=='''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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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및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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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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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병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0946 정지상]",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sup>online</sup></online></html>,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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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역사인물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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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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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4일 (화) 18:44 판

정지상(鄭知常)
대표명칭 정지상
한자표기 鄭知常
생몰년 ?-1135년
출생지 서경(西京)
시대 고려시대
국적 고려
대표저서 신설(新雪), 향연치어(鄕宴致語), 백률사(栢律寺), 서루(西樓), 정사간집(鄭司諫集)



정의

고려 중기의 문신.

내용

서경 출신으로 초명은 정지원(鄭之元)이며, 호는 남호(南湖)이다.[1]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해, 김부식(金富軾)을 중심으로 한 유교적·사대적인 성향이 강하던 개경 세력과 대립하였다. 서경을 거점으로 묘청(妙淸) 등이 난을 일으키자, 적극 가담해 금나라를 정벌하자고 주장하며 칭제건원(稱帝建元)을 하였다. 그러나 개경 세력의 김부식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패해 개경에서 참살되었다.[2]

시(詩)에 뛰어나 고려 열 두 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역학(易學)·불전(佛典)·노장철학(老莊哲學)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림·글씨에도 능했으며 저서로는 『정사간집(鄭司諫集)』이 있다.[3]

작품으로는 『동문선(東文選)』에 「신설(新雪)」·「향연치어(鄕宴致語)」가, 『동경잡기(東京雜記)』에 「백률사(栢律寺)」·「서루(西樓)」등이 전하며, 『정사간집(鄭司諫集)』·『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등에도 시 몇 수가 실려 있다.[4]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정지상 묘청의 난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주석

  1. 민병하, "정지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민병하, "정지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정지상", 『두산백과』online.
  4. 민병하, "정지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웹자원
    • 민병하, "정지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정지상", 『두산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