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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흥녕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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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흥녕사지
(寧越 興寧禪址)
대표명칭 영월 흥녕사지
한자 寧越 興寧禪址
이칭 흥녕선원지(興寧禪院址)
주소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385
문화재 지정번호 강원기념물 제6호
문화재 지정일 1971년 12월 16일
관리자 법흥사
교구정보 대한불교조계종
건립시기 신라시대
창건자 자장
경내문화재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영월 징효국사부도



정의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에 있는 절터.

내용

역사

흥녕선원(興寧禪院)은 자장(慈藏)이 창건하였으며, 도윤(道允)의 제자 징효국사 절중(澄曉國師 折中)사자산문(獅子山門)의 중심사찰로 성장시켰다.[1] 절중은 882년(신라 헌강왕 8)에 이 절에 와서 891년의 병화(兵火)를 피해 떠날 때까지 이곳에 살았다.[2] 전쟁으로 불에 타 없어져버린 흥녕사를 942년(혜종 1)에 다시 세웠으나, 계속되는 재해로 폐허가 되고 현재는 선원지만 남아있다.[3] 이후 천년 가까이 흥녕사는 겨우 명맥만 유지해오다가, 1902년에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중건하여 절이름을 법흥사(法興寺)로 고쳤다. 1912년에 화재를 만나 1930년에 중건하였으나, 이듬해의 산사태로 절터 일부와 석탑이 유실되었다. 1933년에 이곳에서 1㎞ 정도 산쪽으로 올라와 다시 절을 지었으니 곧 지금의 법흥사다.[4]

현황

법흥사(法興寺)로 들어가는 진입로 오른쪽 민가 옆에 위치한 흥녕사지(興寧禪址)는 법당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집터 1곳을 포함해 약 1만평 규모로 현재 집터에는 일부 훼손된 주춧돌 10여 개만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특히 이 일대에 흩어져 있던 절중(折中)징효국사 부도(澄曉國師 浮屠)징효대사탑비(澄曉大師塔碑), 주인을 알 수 없는 부도 1기, 금동불상 1기, 징효국사부도에 사용되었던 석재 등의 유물들은 대부분 법흥사 경내로 옮겨졌고 금동불상은 단국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5]

관련 문화유산

지식관계망

  • 영월 흥녕사지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영월 흥녕사지 A는 B에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영월 징효국사부도 영월 흥녕사지 A는 B에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절중 A는 B를 위한 비이다 A ekc:isSteleOf B
사자산문 영월 흥녕사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영월 흥녕사지 영월 법흥사 A는 B의 터이다 A edm:isRelatedTo B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643년 자장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였다
891년 흥녕사가 병화로 소실되었다
944년 흥녕사가 중건되었다
1902년 흥녕사법흥사로 개칭되었다
1930년 법흥사를 다시 중건하였으나, 이듬해에 산사태로 절터의 일부가 유실되었다.
1971년 강원기념물 제6호로 지정되었다.

시각자료

가상현실


가상 현실 - 전체 화면 보기

주석

  1. 장충식, "흥녕선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신종원, "흥녕선원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원형백과 한강 생활문화』, 문화콘텐츠닷컴, 2006. 온라인 참조: "흥녕선원지", 문화원형백과 한강 생활문화,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4. 신종원, "흥녕선원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5. "흥녕선원지(興寧禪院址)", 『두산백과』online.

참고문헌

  • 신종원, "흥녕선원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장충식, "흥녕선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원형백과 한강 생활문화』, 문화콘텐츠닷컴, 2006. 온라인 참조: "흥녕선원지", 문화원형백과 한강 생활문화,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흥녕선원지(興寧禪院址)", 『두산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