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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일 (수) 13:54 판

김홍도(金弘道)
대표명칭 김홍도
한자표기 金弘道
생몰년 1745년-미상
본관 김해(金海)
단원(檀園), 단구(丹邱), 서호(西湖), 고면거사(高眠居士), 취화사(醉畫士), 첩취옹(輒醉翁)
사능(士能)
시대 조선
대표저서 단원풍속화첩
대표직함 도화서화원
김석무(金錫武)


정의

1745년에 태어난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내용

김홍도의 생애

무반가의 서얼 집안에서 출생한 김홍도는 10~14살 무렵에, 강세황(1713~1791)의 안산 집에 드나들며 그림 그리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1] 그 후 강세황(姜世晃)의 천거로 도화서화원(圖畫署畫員)이 되었다. 강세황의 지도 아래 화격(畫格)을 높이는 동시에, 29세인 1773년에는 영조의 어진(御眞)과 왕세자(뒤의 정조)의 초상을 그렸다. 그리고 이듬해 감목관(監牧官)의 직책을 받아 사포서(司圃署)에서 근무하였다. 1781년(정조 5년)에는 정조의 어진 익선관본(翼善冠本)을 그릴 때 한종유(韓宗裕)·신한평(申漢枰) 등과 함께 동참화사(同參畫師)로 활약하였으며, 찰방(察訪)을 제수받았다.[2]

이 무렵부터 명나라 문인화가 이유방(李流芳)의 호를 따라 ‘단원’이라 자호하였다. 1788년에는 김응환(金應煥)과 함께 왕명으로 금강산 등 영동 일대를 기행하며 그곳의 명승지를 그려 바쳤다. 그리고 1791년 정조의 어진 원유관본(遠遊冠本)을 그릴 때도 참여하였다. 그 공으로 충청도연풍 현감에 임명되어 1795년까지 봉직하였다. [3] 1796년에 편찬된 『불설대보무모은중경 언해』 에 담긴 변상도를 그렸다. 1797년 편찬된 『오륜행실도』 언해의 그림에 김홍도의 화풍이 많이 남아있어 그가 직접 그렸거나, 당시 그의 화풍이 매우 유행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홍도의 작품세계

산수화

김홍도의 작품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편이며, 대체로 50세를 중심으로 전후 2기로 나누어지는 화풍상의 변화를 보인다. 산수화의 경우 50세 이전인 1778년 작인 「서원아집육곡병(西園雅集六曲屛)」(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말해 주듯이, 주로 화보(畫譜)에 의존한 중국적인 정형 산수(定型山水)에 세필로 다루어지는 북종 원체화적(北宗院體畫的) 경향을 나타내었다. 연풍 현감에서 해임된 50세 이후로는 한국적 정서가 어려 있는 실경을 소재로 하는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즐겨 그렸다. 그러면서 ‘단원법’이라 불리는 보다 세련되고 개성이 강한 독창적 화풍을 이룩하였다. 만년에 이르러 명승의 실경에서 농촌이나 전원 등 생활 주변의 풍경을 사생하는 데로 관심이 바뀌었다. 이러한 사경(寫景) 산수 속에 풍속과 인물·영모 등을 가미하여 한국적 서정과 정취가 짙게 밴 일상사의 점경으로 승화시키기도 하였다. [4]

인물화

인물화에서도 자신만의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였다. 특히, 도교(道敎)와 불교(佛敎)에 관계되는 초자연적인 인물들을 많이 그렸는다. 전기에는 주로 신선도를 많이 다루었다. 굵고 힘차면서도 거친 느낌을 주는 의문(衣文: 옷자락 무늬),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 그리고 티 없이 천진한 얼굴 모습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시기의 신선 묘사법은 1776년에 그린 「군선도병(群仙圖屛)」(삼성미술관 소장, 국보 제139호)에서 그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후기가 되면 화폭의 규모도 작아지고, 단아하면서도 분방하며 생략된 필치로 바뀌게 된다. [5]

풍속화

후기에 그는 풍속화를 많이 그렸다.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상과 생업의 점경을 간략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원형 구도 위에 풍부한 해학적 감정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풍속화들은 정선이 이룩한 진경산수화의 전통과 더불어 조선 후기 화단의 새로운 경향을 가장 잘 대변해 준다. [6]

대표작품들

그의 대표작으로는 『단원풍속화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527호)을 비롯해서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개인 소장)·「무이귀도도(武夷歸棹圖)」(간송미술관 소장)·「선인기려도(仙人騎驢圖)」·「단원도(檀園圖)」(개인 소장)와 「섭우도(涉牛圖)」·「기노세련계도(耆老世聯稧圖)」·『단원화첩』(삼성미술관 소장)·「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등이 있다. [7]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김홍도 강세황 A는 B의 제자이다
김홍도 도화서 A는 B에 소속된다
김홍도 김석무 A는 B의 어버이이다
김홍도 한종유 A는 B와 교유하였다
김홍도 신한평 A는 B와 교유하였다
김홍도 동참화사 A는 B에 소속된다 1781년
신한평 동참화사 A는 B에 소속된다 1781년
한종유 동참화사 A는 B에 소속된다 1781년
김홍도 정조 어진 익선관본 제작 A는 B에 참여하였다 1781년
김홍도 영조 어진 제작 A는 B에 참여하였다 1773년
김홍도 왕세자 정조 초상 제작 A는 B에 참여하였다 1773년
신한평 정조 어진 익선관본 제작 A는 B에 참여하였다 1781년
한종유 정조 어진 익선관본 제작 A는 B에 참여하였다 1781년
김홍도 김응환 A는 B와 교유하였다 1788년
김홍도 정조 어진 원유관본 제작 A는 B에 참여하였다 1791년
김홍도 서원아집육곡병 A는 B를 그렸다 1778년
김홍도 군선도병 A는 B를 그렸다 1776년
김홍도 변상도 A는 B를 그렸다 1796년
변상도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언해 A는 B에 포함된다
김홍도 오륜행실도 A는 B와 관련이 있다 1797년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1773년 김홍도가 영조 어진 제작에 참여하였다
1773년 김홍도가 왕세자 정조 초상 제작에 참여하였다
1776년 김홍도가 군선도병을 그렸다
1778년 김홍도가 서원아집육곡병을 그렸다
1781년 김홍도가 동참화사가 되어 정조 어진 익선관본 제작에 참여하였다
1788년 김홍도가 김응환과 함께 산수화를 그렸다
1791년 김홍도가 정조 어진 원유관본 제작에 참여하였다
1796년 김홍도가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언해변상도를 그렸다
1797년 김홍도는 오륜행실도 편찬에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각자료

영상

주석

  1. 홍준표, 「김홍도 생애의 재구성」, 『미술사논총』34, 2012, 107쪽.
  2. 홍준표, "김홍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홍준표, "김홍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홍준표, "김홍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5. 홍준표, "김홍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6. 홍준표, "김홍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7. 홍준표, "김홍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더 읽을거리

  • 단행본
    • 오주석, 『단원 김홍도: 조선적인, 너무나 조선적인 화가』, 한겨레출판사, 2001.
    • 이재원, 『김홍도 : 정조의 이상정치, 그림으로 실현하다』, 살림, 2016.
  • 논문
    • 이양재, 「김홍도 연구」, 『미술세계』128, 1995.
    • 변영섭, 「스승과 제자, 강세황(姜世晃)이 쓴 김홍도(金弘道) 전기- 〈檀園記〉·〈檀園記 又一本〉」, 『미술사학연구』275·276, 한국미술사학회, 2012.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