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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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관서정보

정의

이나 왕비의 국장에 관한 모든 것을 담당한 기관이다.[1]

내용

업무

의 승하부터 왕릉에 시신을 매안한 뒤 신주를 받들고 돌아와 혼전[2]에 봉안하기까지의 상례와 장례에 따르는 모든 의전(儀典), 재정, 시설, 문서 업무들을 담당한다. 혼전을 신전에 봉안하는 것으로 국장도감은 임무를 마치게 되는데, 이 시기는 대체로 반우(返虞)하는 날이다. 반우하는 날 국장도감의궤의 사목이 마련되고 사역원에서 의궤청을 설치해 국장도감의궤를 편찬하면 국장도감의 임무는 끝이 난다.[3] 국장도감은 1365년(공민왕 14)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상사(喪事) 때 처음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396년(태조 5)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의 상에 설치되었으며 그 아래에 상복ㆍ옥책(玉冊)ㆍ관곽(棺槨)을 담당하는 13소가 부설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도청(都廳)과 일방ㆍ이방ㆍ삼방으로 조직되었다. 여기에 분전설사(分典設司), 분장흥고(分長興庫), 지석소(誌石所), 우주소(虞主所), 별공작소(別工作所) 등이 부설되어 업무를 분담하였다. 도청은 의전의 집행과 전체업무의 지휘하고, 일방은 상여ㆍ주렴(朱簾), 평상(平床) 등의 제작하며, 이방은 각종 의장(儀仗)ㆍ기명(器皿)의 준비하고, 삼방은 애책(哀冊)ㆍ인문(印文)ㆍ만장(輓章) 등 문서를 맡았다. 분전설사와 분장흥고 등은 각각 시설이나 재정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4]

구성

도제조 1인, 예조판서나 호조판서, 선공감제조(繕工監提調) 등으로 임명되는 제조 3인 3~4품의 문관인 도청 2인, 4~6품의 낭청 6인 중 4인은 예조나 공조의 당하관과 제용감ㆍ선공감에서 채용하고, 나머지 2명의 직급은 당하관이며, 감조관 7인으로 구성된다.[5] 이외에도 독책관(讀冊官), 독보관(讀寶官)ㆍ상시책보관(上諡冊寶官) 등 50여인의 유사(有事)가 있었다. 왕비의 국장에는 독책관 이하에 고위 내시들이 임명되었다.[6]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국장도감 경종국장도감의궤 A는 B를 담당하였다
국장도감 선의왕후국장도감의궤 A는 B를 담당하였다
국장도감 숙종국장도감의궤 A는 B를 담당하였다
국장도감 순조국장도감의궤 A는 B를 담당하였다
국장도감 인현왕후국장도감의궤 A는 B를 담당하였다
국장도감 정조국장도감의궤 A는 B를 담당하였다
국장도감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 A는 B를 담당하였다
국장도감 효종국장도감의궤 A는 B를 담당하였다

시간정보

시간 내용
1365년 국장도감이 설치되었다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1.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72쪽.
  2. 혼전(魂殿): 왕이나 왕비의 국상에서 장례를 마치고 종묘에 입향할 때까지 신위를 모시는 곳.
  3.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73쪽.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장도감
  5.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74쪽.
  6.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장도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박례경, 「조선시대 國葬에서 朝祖儀 설행 논의와 결과」, 『奎章閣』 31, 서울대학교, 2007.
  • 이현진, 「영조대 왕실 喪葬禮의 정비와 『國朝喪禮補編』」 『韓國思想史學』 37, 한국사상사학회, 2011.
  • 이현진, 「정조 초 영조의 국장 절차와 의미」, 『泰東古典硏究』 27,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1.
  •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글항아리, 2015.
  • 이현진, 『조선 왕실의 상장례』, 신구문화사, 2017.

더 읽을거리

유용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