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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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12월 27일 (수) 00:39 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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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契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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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거란
한자표기 契丹
유형 종족



정의

퉁구스와 몽고의 혼혈로 형성된 동호계(東胡系)의 한 종족으로 4세기경부터 동몽골 지역에 살았던 유목민족의 한 일파이다.[1]

내용

요(遼)의 건국

거란은 5세기 중엽부터 요하 상류(遼河上流)인 시라무렌(Siramuren) 남쪽에서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어 유목생활을 하던 민족이다. 916년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황제를 칭하고 거란국(契丹国)을 건국하였다. 925년 2월에 발해를 침공해 이듬해 2월에 멸망시켰다. 또한 938년 중국을 침략해 연운(燕雲) 16주를 영토의 일부로 편입시키고 국호를 대요(大遼)로 바꾸었다.

남진정책

그 후 요나라는 남진정책을 계속 실시하였으나 960년 송(宋)이 건국됨으로써 대치하는 상태가 되었다. 대제국을 형성한 거란은 북쪽 초원지대에는 북면관(北面官)을, 남쪽 농경지대의 한인(漢人)들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당(唐)의 군현 제도를 그대로 본뜬 남면관(南面官)을 설치하여 이원적 호한분치제도(胡漢分治制度)를 형성하였다.

요의 멸망

요나라는 여진족을 통일한 완옌부(完顔部)의 아구다가 건국한 (金, 1115-1234)과 연운16주를 되찾으려는 북송(北宋)의 협공으로 1125년 200여년 만에 멸망하였다. 그 후 황족인 야율대석(耶律大石)이 남은 세력을 이끌고 서쪽으로 이동해 1132년에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서요(西遼)를 건국하였다. 서요(西遼)는 3대에 걸쳐 존속하였지만 1218년 몽골(蒙古)에 복속되어 멸망하였다.

고려와의 관계

916년 거란국을 세운 야율아보기는 922년 고려 태조(太祖, 877~943)에게 낙타와 말, 털방석 등을 예물로 보내며 고려에 수교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고려는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되자 발해의 유민을 받아들이며 이들을 우대한 반면, 거란에 대해서는 적대관계를 유지하였다.
942년에도 요(遼)의 태종(太宗)이 사신 30여명과 낙타 50마리를 보내 호의를 보였지만, 고려 태조는 낙타를 만부교(萬夫橋) 아래에 매어놓아 굶겨 죽였다.
고려는 송(宋)과 연합하여 거란에 대한 적대 정책을 계속하였다. 정종(定宗, 923~949)대에는 거란 침입에 대비하여 광군(光軍) 30만으로 광군사(光軍司)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고려의 정책은 요(遼) 침입의 빌미가 되어 993년(성종 12), 1010년(현종 1), 1018년(현종 9)의 3차에 걸쳐 고려에 침입하였다.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야울아보기 거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거란 발해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거란 고려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거란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야울대석 서요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몽골 서요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1. "거란", 용어사전, 『문화콘텐츠닷컴』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웹 자원
    • 이용범, "거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거란족", 『doopedia』online, 두산백과.
    • "요나라", 『doopedia』online,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