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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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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혼령 기간에 처녀 단자를 받은 후 대상자들을 궁궐에 모아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의 세 단계 절차로  진행된다.<ref>김문식, 신병주 지음,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80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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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단자를 제출한 30명 이내의 처녀들을 대상으로 '재간택' 과정으로 갈 대상자를 선별하는 과정으로, [[숙종]] 이후 5명을 선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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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단자를 제출한 30명 이내의 처녀들을 대상으로 한 1차 선발과정으로, [[숙종]] 이후 5명을 선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간택에서 탈락한 처녀들은 혼인이 허락되었다.<ref>임민혁,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글항아리, 2017, 78쪽.</ref> '초간택' 시의 복장은 기록에 없지만, [[견마기]]에 다홍색 [[치마]]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f>신병주 외3명, 『왕실의 혼례식 풍경』, 돌베개, 2013, 219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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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간택'에서 뽑힌 5명을 대상으로 삼간택에 올릴 3명을 뽑는 과정이다. [[왕비]] 간택은 기록이 없지만, [[왕세손빈]] [[간택]] 사례를 통해 본면 '재간택'부터는 후보자들에 대한 호위를 철저히 하는 등 특별 대우했다.<ref>임민혁,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글항아리, 2017, 78쪽.</ref> '재간택'에 착용하는 복식은 [[견마기]], [[저고리]], [[치마]]이다.<ref>신병주 외3명, 『왕실의 혼례식 풍경』, 돌베개, 2013, 219쪽.</ref>
'재간택'에 착용하는 복식은 [[견마기]], [[저고리]], [[치마]]이다.<ref>신병주 외3명, 『왕실의 혼례식 풍경』, 돌베개, 2013, 219쪽.</ref><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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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순, 「嘉禮都監儀軌에 나타난 가례복식의 실태에 관한 연구」, 『韓國衣類學會誌』 15권 1호, 한국의류학회, 1991.
 
* 최경순, 「嘉禮都監儀軌에 나타난 가례복식의 실태에 관한 연구」, 『韓國衣類學會誌』 15권 1호, 한국의류학회, 1991.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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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궁중기록화]] [[분류:개념]] [[분류:의례]]

2017년 11월 2일 (목) 22:42 기준 최신판

간택
(揀擇)
대표명칭 간택
한자표기 揀擇
유형 의례
관련개념 가례, 혼례



정의

조선시대 왕실에서 혼인을 치르기 위해 왕비왕세자빈, 부마부인 후보 중에서 적격자를 선택하는 절차이다.[1]

내용

금혼령 기간에 처녀 단자를 받은 후 대상자들을 궁궐에 모아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의 세 단계 절차로 진행된다.[2]

초간택(初揀擇)
처녀 단자를 제출한 30명 이내의 처녀들을 대상으로 한 1차 선발과정으로, 숙종 이후 5명을 선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간택에서 탈락한 처녀들은 혼인이 허락되었다.[3] '초간택' 시의 복장은 기록에 없지만, 견마기에 다홍색 치마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4]

재간택(再揀擇)
'초간택'에서 뽑힌 5명을 대상으로 삼간택에 올릴 3명을 뽑는 과정이다. 왕비 간택은 기록이 없지만, 왕세손빈 간택 사례를 통해 본면 '재간택'부터는 후보자들에 대한 호위를 철저히 하는 등 특별 대우했다.[5] '재간택'에 착용하는 복식은 견마기, 저고리, 치마이다.[6]

삼간택(三揀擇)
'재간택'에서 뽑힌 3명 중에 마지막 1명을 뽑는 과정으로, '삼간택'에서의 최종 선택은 ‘묘선(妙選, 오묘한 선택)’이라 한다.[7] '삼간택'에 착용하는 복식은 견마기, 저고리, 치마인데, 최종 간택 내정자는 견마기 대신 당의원삼을 착용한다. '삼간택'에 뽑힌 예비 왕비왕세자빈은 별궁에 모셔진다. 별궁은 예비자가 미리 왕실의 법도를 배우는 공간이면서 이나 왕세자가 친히 사가(士家)에 가는 부담을 덜어주려는 차원에서 마련된 곳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별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곳은 어의궁이었다. 별궁에서 왕실의 법도를 배운 예비 왕비는 곧이어 혼인 의식의 기본이 되는 육례에 근거하여 왕이나 왕세자와 혼례를 치른다.[8]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간택 A는 B를 참여하였다 A ekc:participates B
혼례 간택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간택 금혼령 A는 순서상 B의 뒤이다 A edm:isNextInSequence B

주석

  1. 김문식, 신병주 지음,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80쪽.
  2. 김문식, 신병주 지음,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80쪽.
  3. 임민혁,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글항아리, 2017, 78쪽.
  4. 신병주 외3명, 『왕실의 혼례식 풍경』, 돌베개, 2013, 219쪽.
  5. 임민혁,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글항아리, 2017, 78쪽.
  6. 신병주 외3명, 『왕실의 혼례식 풍경』, 돌베개, 2013, 219쪽.
  7. 임민혁, 『조선 국왕 장가보내기』, 글항아리, 2017, 81쪽.
  8. 신병주 외3명, 『왕실의 혼례식 풍경』, 돌베개, 2013, 219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권오영 외, 『조선 왕실의 嘉禮』,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김문식, 「1823년 明溫公主의 가례 절차」, 『조선시대사학보』 56, 조선시대사학회, 2011.
  • 김문식, 신병주 지음,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 김선아, 「조선시대 치마ㆍ저고리 배색 특성에 관한 고찰-『嘉禮都監儀軌󰡕를 중심으로」, 『한국색채학회 논문집』 22권 1호, 한국색채학회, 2008.
  • 김아람, 「복식고증을 통한 복온공주 혼례 친영반차도 구현」,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 김정진, 「朝鮮時代 『嘉禮都監儀軌』에 나타난 班次圖의 構造的 硏究」,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8.
  • 백영자․김정진, 「조선시대 『嘉禮都監儀軌』의 班次圖에 나타난 服飾 연구」, 『韓國衣類學會誌』 14권 2호, 한국의류학회, 1990.
  • 신명호, 『조선의 왕』, 가람기획, 2000.
  • 신명호, 『조선 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문화』, 돌베개, 2002.
  • 신병주,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효형출판, 2001.
  • 신병주 외3명, 『왕실의 혼례식 풍경』, 돌베개, 2013.
  • 신병주, 박례경 외 2명 저, 『왕실의 혼례식 풍경 (조선 왕실의 행사 2)』, 돌베개, 2013.
  • 신순자, 「『嘉禮都監儀軌』에 나타난 唐衣에 대한 고찰」, 석사학위논문, 세종대학교1989.
  • 심승구, 「조선시대 왕실혼례의 추이와 특성」, 『朝鮮時代史學報』 41, 조선시대 사학회, 2007.
  • 유송옥, 「조선왕조시대 가례도감의궤와 그에 나타난 복식」, 『大東文化硏究』 20,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1986.
  • 유송옥, 『朝鮮王朝 宮中儀軌服飾』 , 1991.
  • 이경자, 「『嘉禮都監儀軌』의 服飾 硏究」, 『服飾』 1권, 한국복식학회. 1977.
  • 이욱, 「『덕온공주가례등록』을 통해 본 덕온공주 가례 절차」, 『한국복식』 3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12.
  • 이욱, 「조선후기 後宮 嘉禮의 절차와 변천-慶嬪 金氏 嘉禮를 중심으로」, 『장서각』 19,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이은주, 「『덕온공주가례등록』을 통해 본 공주가례복식」, 『한국복식』 3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12.
  • 이주미, 「『연잉군가례등록』에 나타난 왕자가례의 절차와 복식」,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 임민혁, 「조선시대 『謄錄』을 통해 본 왕비의 親迎과 권위」, 『韓國史學史學報』 25, 한국사학사학회, 2012.
  • 임민혁, 『조선국왕 장가보내기』, 글항아리, 2017.
  • 조미나, 「조선왕조 『가례도감의궤』에 나타난 궁녀의 직무에 따른 복식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2.
  • 최경순, 「嘉禮都監儀軌에 나타난 가례복식의 실태에 관한 연구」, 『韓國衣類學會誌』 15권 1호, 한국의류학회, 1991.
  • 최연우, 『면복』, 문학동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