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황룡사의 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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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의 조영 | |
작가 | 김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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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연도 | 1977년 |
규격 | 300호(197x290.9cm) |
유형 | 종교 |
분류 | 유화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목차
정의
신라 제일의 사찰이었던 황룡사의 조영 광경을 그린 김태의 민족기록화이다.
설명
작품 소재
황룡사 건축은 553년부터 569년까지 총 17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본래는 신라 24대 진흥왕(眞興王, 534~576) 때에 본궁 남쪽에 짓던 새 궁궐이었으나, 궁을 짓는 도중에 황룡이 출현하자 이를 기려 불사(佛寺)로 고쳤고 황룡사(皇龍寺)라 명명하였다. 절의 구조는 전형적인 삼국시대 가람 건축 구조를 따르고 있으며 남쪽에서부터 중문·탑·금당·강당의 순으로 당우를 배치하고 그 주위에 회랑을 둘러 명실상부한 국찰(國刹)의 면모를 갖추었다.[1] 중앙에 위치한 구층 목탑에는 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나라로 유학갔던 자장이 태화지(太和池) 옆을 지날 때 신인(神人)이 나와서, “황룡사 호국룡(護國龍)은 나의 장자(長子)로 범왕(梵王)의 명을 받아 그 절을 보호하고 있으니, 본국에 돌아가서 그 절에 9층탑을 이룩하면 이웃나라가 항복하고 구한(九韓)이 와서 조공하며 왕업이 길이 태평할 것이요, 탑을 세운 뒤에 팔관회(八關會)를 베풀고 죄인을 구하면 외적이 해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 ||
출처: 정병조, "황룡사", |
작품의 오른편에서 지어지고 있는 구조물이 바로 ②③⑤⑥ 황룡사 구층목탑이다. 왼편에서는 인부들이 ④ 소달구지에 건축 자재를 실어 나르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고, 아래편에서는 대들보 등으로 쓰일 나무에 홈을 파고 있는 ⑦⑨ 인부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작품 배경
건축 당시에는 월성(月城)의 동쪽 용궁의 남쪽에 있었던 황룡사는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사적 제 6호로 지정된 황룡사지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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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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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황룡사의 조영 | 김태 | A는 B가 그렸다 | A dcterms:creator B |
김태-황룡사의 조영 | 한국학중앙연구원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김태-황룡사의 조영 | 황룡사 |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A ekc:depicts B |
김태-황룡사의 조영 | 황룡사 구층목탑 |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A ekc:depicts B |
황룡사 구층목탑 | 황룡사 | A는 B에 있었다 | A ekc:formerLocation B |
황룡사 장육존상 | 황룡사 | A는 B에 있었다 | A ekc:formerLocation B |
황룡사 장육존상 | 아소카왕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황룡사 | 진흥왕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황룡사 | 황룡사지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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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 김태가 김태-황룡사의 조영을 그렸다. |
1998년 12월 30일-현재 |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김태-황룡사의 조영을 소장하고 있다. |
569년 |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주도로 건설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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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915557 | 127.0547403 |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김태-황룡사의 조영을 소장하고 있다. |
관련 민족기록화
723-727년 김충선-혜초의 천축구법 활동
751년- 이종상-김대성과 석굴암
1237-1251년 최대섭-고려대장경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 ↑ 정병조, "황룡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민족기록화1",
『국가기록원 기록물뷰어』online , 국가기록원. - ↑ "민족기록화1",
『국가기록원 기록물뷰어』online , 국가기록원. - ↑ 민족기록화팀 촬영(2017년 5월 13일)
- ↑ 민족기록화팀 촬영(2017년 5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