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산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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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비명(四山碑銘) | |
대표명칭 | 사산비명 |
---|---|
한자표기 | 四山碑銘 |
유형 | 비문 |
저자 | 최치원(崔致遠) |
편자 | 최치원(崔致遠) |
시대 | 통일신라 |
정의
통일신라 말에 최치원(崔致遠, 857-?)이 지은 비문 중, 가치가 높은 4개의 비문을 뽑아 엮어 만든 책.
내용
네 편의 비문은 각각 보령 성주사지(保寧 聖住寺址)에 있는 낭혜화상탑비(朗慧和尙塔碑)의 비문, 하동 쌍계사(河東 雙磎寺) 경내에 있는 진감선사탑비(眞鑑禪師塔碑)의 비문, 경주 초월산에 위치한 숭복사지(嵩福寺址)에 있던 대숭복사비(大嵩福寺碑)의 비문, 문경 봉암사(聞慶 鳳巖寺) 경내에 있는 지증대사탑비(智證大師塔碑)의 비문을 가리키며, 위의 네 군데 산 이름을 취하여 일반적으로 ‘사산비명(四山碑銘)’이라 일컫는다.[1]
네 비 모두 왕명에 의해 찬술되었으며,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로부터 은거하기 이전에 걸쳐 찬술되었다. 현재 대숭복사비를 제외한 세 비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전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절과 함께 파괴된 것으로 알려진 대숭복사비는 1931년 이후 그 잔편(殘片)이 몇 차례 발굴되었다. 진감선사탑비와 대숭복사비는 최치원이 직접 글씨까지 썼으며, 낭혜화상탑비는 최언위(崔彦撝)가, 지증대사탑비는 분황사(芬皇寺) 승려 혜강(慧江)이 썼다.[2]
네 편의 비문 모두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이라는 문체로 기록되어 있어서 읽기 어렵다. 내용이 쉽지 않아 예로부터 많은 해설서가 나왔는데, 광해군 때 철면노인(鐵面老人)이 『사산비명』이란 이름으로 낸 주석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해설서이자 가장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
지식 관계망
-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사산비명 | 최치원 | A는 B가 저술하였다 | A dcterms:creator B |
사산비명 |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사산비명 |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사산비명 | 경주 숭복사지 대숭복사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사산비명 |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사산비명 | 사륙변려문 | A는 B로 쓰여졌다 | A edm:isRelatedTo B |
주석
- ↑ 이도학, "사산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이도학, "사산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사산비명",
『두산백과』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