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농암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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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종택 (聾巖宗宅) |
|
대표명칭 | 농암종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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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聾巖宗宅 |
유형 | 유적 |
시대 | 조선 |
관련인물 | 이현보, 이황 |
정의
농암종택은 ‘어부가’로 유명한 조선 시대 대표 문인 농암 이현보가 정계 은퇴 후 머물던 종택이다.
내용
설립 및 현황
안동 도산서원 인근에 위치한 농암종택은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의 종택(宗宅)이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원래 종택이 있던 분천마을이 수몰되었다. 안동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이건(移建)되어 있던 종택과 사당,별채, 서원 등의 건물을 영천이씨 문중의 종손 이성원이 한곳으로 옮겨 놓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이현보 초상의 이모본이 소장되어 있다.[1]
주변 환경
종택은 이현보의 학덕을 기린 분강서원, 그의 효심을 상징하는 애일당, 별채 긍구당, 강각 등의 유적들이 모여 분강촌을 이룬다. 종택에 들어서면 긍구당이 위치해 있으며, 긍구당 근처에는 사랑채가 있다.[2]
농암종택과 강호문학
이현보는 1524년 76세에 모든 관직에서 은퇴하고 산수가 아름다운 고향 예안으로 돌아와 독서와 시작으로 여생을 보냈고 효빈가와 농암가, 어부사 등을 남겼다. 특히 어부사는 이황의 도산십이곡에 영향을 줬고,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로 이어지게 했다. 강호문학의 전성기를 이끈 농암은 훗날 이황과 이이의 학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3]- ↑ "농암종택",
『두산백과』online . - ↑ 사효진, "이현보의 숨결이 깃든 ‘농암 종택’", 『트레블바이크뉴스』, 작성일:2015년 12월 01일.
- ↑ 오종명, "안동 농암 이현보 '농암종택'", 『경북일보』, 작성일:2016년 0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