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군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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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현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11월 8일 (수) 16:2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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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절도사
(水軍節度使)
대표명칭 수군절도사
한자표기 水軍節度使
유형 제도



정의

조선시대 각 도 수군을 총지휘하기 위하여 두었던 정3품 외관직(外官職) 무관.[1]

내용

수사(水使)라고도 한다.『경국대전』에 따르면, 절도사의 임기는 720일이며 수영(水營)이 주재하는 곳을 주진(主鎭)이라 하였다. 세종 때 왜구를 막기 위하여 두었던 수군도안무처치사(水軍都安撫處置使)를 1466년(세조 12) 관제를 다시 정할 때 개칭한 것이다.[2]

조선 전기에는 각 도의 수사가 진관체제(鎭管體制)에 의해 몇 명의 수군절제사 또는 첨절제사가 관할하는 거진(巨鎭)을 통하여 만호가 관할하는 제진(諸鎭)의 수군을 지휘했다.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을 겪는 도중인 1593년(선조 26)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설치되었고, 1627년(인조 5) 경기지역 해안의 국방 강화를 위해 경기도·황해도·충청도 수군을 통할하도록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을 설치하였다.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는 경상우수사가, 삼도수군통어사(三道水軍統禦使)는 경기수사가 겸직하였다.처음에는 중앙의 관직을 띤 채 파견되다가, 1477년(성종 8)부터 중앙 관직을 겸하지 않게 되었다. 병마절도사와는 달리 거의 모두 무신으로 임명했는데, 조선 전기에는 병마절도사를 지낸 이가 수군절도사에 임명되기도 했으나 조선 후기에는 수군절도사를 거쳐서 병마절도사로 승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895년(고종 21) 기존의 군영이 모두 폐지됨으로써 수군절도사도 소멸되었다. 인용 오류: <ref> 태그를 닫는 </ref> 태그가 없습니다

절도사는 예하의 진(鎭)·포(浦)·보(堡)와 그에 딸려 있는 전함(戰艦), 첨절제사(僉節制使:종3품)·우후(虞侯:정4품)·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종4품)·만호(萬戶:종4품)·권관(權管:종9품)·별장(別將:종9품) 등을 통솔하였는데, [3] 교동(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보령·우수영(右水營 :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가배량(加背梁 : 지금의 경상남도 거제시 도산면) 등은 각 도의 수영이었다.[4]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시각자료

주석

  1. "수군절도사",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2. 조성도, "수군절도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두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15098&cid=40942&categoryId=31675
  4. 조성도, "수군절도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수군절도사", 관직명,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 "수군절도사",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조성도, "수군절도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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