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 무신도
최영 무신도 | |
한자명칭 | 崔瑩 巫神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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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미상 |
제작시기 | 조선 |
소장처 | 인왕산 국사당 |
유형 | 초상 |
크기(세로×가로) | 110×65㎝ |
목차
정의
고려 말의 명장인 최영(1316~1388)의 모습을 그린 초상.
내용
초상의 제작 및 보관
고려 말기의 명장인 최영장군은 무속의 신으로 모셔져 전국각지의 신당에 그려졌다. 무속신앙에서는 ‘최영 장군신’ 또는 ‘최일 장군신’으로 불리며 이성계(李成桂)에게 패하고 억울하게 죽어서 원혼이 되었기 때문에 무속신앙의 숭배대상이 된 듯하다. 원래 단군 시조의 복식이었으나 조선시대 후기에 와서 장군복으로 복식이 바뀌었다.[1] 최영장군은 무신도에 부부병좌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2]
<최영 무신도>는 서울 인왕산 국사당 내의 여러 그림 중 하나로 조선 말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비단 바탕에 채색을 한 무신도 중 우수한 화격의 그림이다. 국사당은 서울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명성이 높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굿당이다. 원래의 국사당은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으나 1925년 일본인들이 남산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건립하게 되자 해체하여 지금의 자리에 복원한 것이라 한다.
국사당 무신도는 무당들의 일반적인 신당이나 기타 굿당의 것들에 비해 필치가 우수하고 기품이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특히 <최영 무신도>를 비롯하여 큰 대청에 걸려 있는 대부분의 무신도는 19세기 전반 준화원급의 화가에 의해 그려진 뛰어난 것으로 평가 된다. <최영 무신도> 등 비교적 오래되고 품격이 높은 국사당 무신도는 조선시대 무의 신 관념과 국당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 된다.[3]
초상에 묘사된 모습
<최영 무신도>는 큰 칼을 들고 등에는 화살통을 맨 채로 호피를 깐 의자에 앉은 정면관의 전신좌상으로 그려졌다.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있다. 도포에는 당초문이 섬세하고 정성들여 그려졌는데 여타의 무신도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칼에는 음영이 들어가 있으며 투구의 장식도 섬세하게 그려졌다. 얼굴은 도식화된 모습이기는 하나 우뚝 솟은 큰 코와 길게 찢어진 눈의 표현에서 장군의 용맹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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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무신도 | 초상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최영 무신도 | 최영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최영 무신도 | 인왕산 국사당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도포 | 최영 무신도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isShownOn B |
투구 | 최영 무신도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isShownOn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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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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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788110 | 126.9594710 | 최영 무신도은 인왕산 국사당에 소장되어 있다. |
시각자료
주석
- ↑ 오현정, 『한국 무신도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석사학위논문, 1992, 27쪽.
- ↑ 윤열수,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무신도』, 이가책, 1994, 164쪽.
- ↑ "국사당의무신도",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웹 자원
- "국사당의무신도",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국사당의무신도", 문화재검색,
- 단행본
- 윤열수,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무신도』, 이가책, 1994.
- 논문
- 오현정, 『한국 무신도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석사학위논문,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