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숙수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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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숙수사지 (榮州 宿水寺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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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주 숙수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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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榮州 宿水寺址 |
시대 | 통일신라 |
관련인물 | 안향, 주세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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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
내용
숙수사가 언제 법통이 끊어졌는지 알길은 없으나 고려 후기의 학자인 안향(安珦)이 숙수사에서 수학하여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그의 아들과 손자까지 이 숙수사에서 수학했다고 한다. 더구나 안향이 원나라로부터 주자학을 도입하여 이것이 조선 건국의 정신적인 이념이 되었으므로, 중종 때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1543년(중종 38) 안향의 고향이며, 또 안향이 공부했던 숙수사의 옛터에 사우(祠宇)와 강당을 세우고 유생(儒生)들을 공부하도록 하였다.[1]
이것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 되었다. 이로 보아 숙수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건립되어 고려시대까지 존속되어오다 조선시대의 어느 시기에 법통이 끊기고 터만 남아오다 1543년에 이 절터에 서원을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1953년 현재의 소수서원 후편으로 소수중학교 운동장을 마련하다 청동불상 25구가 출토되었는데, 이 불상들은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으로 밝혀졌다. 또 서원경내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각종 석조물이 남아 있어 사찰의 규모와 존폐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사찰경내에 있었던 숙수사의 당간지주(幢竿支柱)는 보물 제5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2]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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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숙수사지 | 영주 소수서원 | A는 B와 관련이있다 | A edm:isRelatedTo B |
영주 숙수사지 | 안향 | A는 B와 관련이있다 | A edm:isRelatedTo B |
영주 숙수사지 | 주세붕 | A는 B와 관련이있다 | A edm:isRelatedTo B |
주석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조유전,"숙수사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