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원
혼원(混元) | |
대표명칭 | 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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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混元 |
생몰년 | 1191년(명종 21)-1271년(원종 12) |
시호 | 진명국사(眞明國師) |
호 | 충경(冲鏡) |
탑호 | 보광(普光) |
성씨 | 이씨(李氏) |
본관 | 수안(遂安) |
출신지 | 수안(遂安) |
정의
고려 후기의 승려.
내용
진명국사 혼원(眞明國師 混元)의 아버지는 사덕(師德)이며, 어머니는 김열보(金閱甫)의 딸이다. 13세 때 외삼촌인 운손선사(雲孫禪師)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사굴산문(闍掘山門)에서 이름을 날리다가 선선(禪選)의 상상과(上上科)에 급제하였으나 명리를 버리고 참선에 몰두하였다. 쌍봉사(雙峰寺)의 청우(靑牛)를 모시고 수행하다가 뒤에 수선사(修禪社) 제2세 혜심(慧諶)의 문하에 들어갔고, 수선사 제3세인 청진국사(淸眞國師) 몽여(夢如)의 지도를 받았다. 당시의 권력자 최우(崔瑀)가 그의 도행(道行)을 흠모하여 왕에게 아뢰어 삼중대사(三重大師)의 직을 내리고 정혜사(定慧社)의 주지로 임명하였으나, 얼마 뒤 사양하고 전국을 다니면서 설법하였다.[1] 1245년(고종 32) 개경(開京)에 선원사(禪源寺)가 창건되자 다음해에 왕명으로 이곳에 머물며 대선사(大禪師)가 되어 몽여의 법통(法統)을 이었다.[2] 1252년 청진국사가 입적하자 왕으로부터 조계산 수선사의 제4세 사주(社主)로 임명받아 그 때부터 수선사에서 선풍(禪風)을 떨쳤고, 혜심이 머물렀던 단속사(斷俗寺)를 감독하는 도감(都監)으로 임명받았다. 1256년 천영(天英)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은거하였으나 다시 고종의 부름을 받고 자운사(慈雲寺)로 가서 1259년 왕사가 되었다. 1260년 원종이 즉위한 뒤에도 특별히 예우하고 존숭하였지만 다음해 다시 수선사로 돌아와 설법하면서 후학들을 지도하였다.[3] 1259년(고종 46) 왕사(王師)가 되고 죽은 뒤에 국사(國師)에 추증되었다.[4]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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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김위석, "혼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혼원",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김위석, "혼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혼원",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