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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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信眉) | |
대표명칭 | 신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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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信眉 |
생몰년 | ?-? |
이칭 | 혜각존자(慧覺尊者) |
성씨 | 김씨(金氏) |
본관 | 영동(永同) |
속명 | 김수성(金守省) |
정의
조선 전기의 승려.
내용
신미(信眉)의 아버지는 김훈(金訓)이며, 동생은 유생이면서도 숭불을 주장했던 김수온(金守溫)이다. 법주사(法住寺)에 출가하여 사미(沙彌) 시절에 수미(守眉)와 함께 대장경을 읽고 율을 익혔다.[1]
세종 말년에 왕을 도와 불사를 중흥시켰으며, 문종 대에는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에 임명되었다. 세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그를 경애하였고, 왕위에 오르자 불교의 중흥을 주관하게 하였으며, 왕사(王師)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2]
1458년(세조 4)에 해인사의 대장경을 50부 인쇄할 때 이를 감독하였고, 1461년에 왕명으로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여 불전(佛典)의 번역과 간행을 주관하였다.[3] 1464년 2월 세조가 속리산 복천사로 행차하였을 때 그곳에서 사지(斯智)·학열(學悅)·학조(學祖) 등과 함께 대설법회(大說法會)를 열었다. 또한 같은 해에 상원사(上院寺)로 옮겨 왕에게 상원사의 중창을 건의하였고, 이에 왕은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을 지어 이를 시행하도록 하였다. 특히 세조는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호를 내리고 존경하였다.[4]
속리산 복천암(福泉庵),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월출산 도갑사(道岬寺) 등에 머물렀으며,[5] 복천암에는 부도(보은 법주사 복천암 수암화상탑)가 남아있다.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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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김위석, "신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위석, "신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신미", 용어해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김위석, "신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온라인 참조: "신미", 용어해설,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