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 초상
이삼 초상 | |
한자명칭 | 李森 肖像 |
---|---|
작가 | 미상 |
제작시기 | 18세기 초 |
소장처 | 백제군사박물관 |
문화재지정사항 | 보물 제588호 |
유형 | 초상 |
크기(세로×가로) | 62×40㎝ |
목차
정의
조선시대 무신인 이삼(1677∼1735)의 모습을 그린 야외 초상화.
내용
초상의 제작 및 보관
이삼의 일상의 모습을 그린 야외초상화이다. 초상화의 상단에는 "이 장군을 청담이 그리다(李將軍淸潭寫)."라는 제목이 있다. "청담"은 화가의 호로 여겨지며 지방화사 내지는 화승으로 추정된다.
<이삼 초상>과 같은 야외 초상화는 중국의 경우 명, 청대 초상화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크게 유행하였으며 때로 배경은 산수화전문화가에게 맡기고 인물은 초상화가가 그리는 합작형식의 작품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하지만 조선에서 야외 초상화 형식은 <석천공한유도(石泉公閒遊圖)>나 <정약종 초상> 소수의 작품만이 전해온다.[1]
<이삼 초상>은 원래 이삼 장군 집안의 백일헌에 모셔져 있다가 현재는 논산의 백제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하는 예가 극히 드문 야외 초상화의 하나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초상에 묘사된 모습
<이삼 초상>에서 이삼은 전립과 전복을 착용하고, 소나무를 배경으로 바위 위에 걸터 앉아있는데 다소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오른 발을 왼발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등채를 잡고, 왼손은 청색 허리띠를 잡고 있다. 허리띠에는 장도가 달려있으며, 소나무 위에는 매 한 마리가 앉아있어 무인의 용맹함을 은유화하였다.[2]
이삼의 얼굴은 무인다운 다부진 인상을 보여준다. 얼굴과 이목구비, 윤곽선은 적갈색 선으로 정의되어 있고 빰과 팔자주름 등에 약간의 음영을 가하고, 움푹 들어간 부위를 음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삼은 무인으로 자태는 두 눈이 언제나 빛났으며 , 다소 야윈 서생 같았으나 늠름한 용력은 당시에 따라갈 자가 없는 외유내강의 무인이었다.[3] 그림에서도 길고 마른 얼굴이지만 강인한 인상이 엿보인다. 분무공신화상소첩의 얼굴보다 좀 더 부드럽고 나이가 든 인상이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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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첨 초상(반신상) | 초상 | A는 B에 해당한다 | A dcterms:type B |
강민첨 초상(반신상) | 강민첨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강민첨 초상(반신상) | 박춘빈 | A는 B가 그렸다 | A dcterms:creator B |
강민첨 초상(반신상) | 국립중앙박물관 | A는 B에 소장되어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
강민첨 초상(반신상) | 강민첨 초상(반신상) 제기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우안팔분면 | 강민첨 초상(반신상)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홀 | 강민첨 초상(반신상)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isShownOn B |
공복 | 강민첨 초상(반신상)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isShownOn B |
복두 | 강민첨 초상(반신상) | A는 B에 나타난다 | A ekc:isShownOn B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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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 강민첨 초상(반신상)이 제작되었다. |
1975년 5월 16일 | 강민첨 초상(반신상)이 보물 제588호로 지정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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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238510 | 126.9804700 | 강민첨 초상(반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시각자료
주석
- ↑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52쪽.
- ↑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345쪽.
- ↑ 조선미, 『한국의 초상화, 形과 影의 예술』, 돌베게, 2009, 248쪽.
참고문헌
유용한 정보
- 웹 자원
- "강민첨 초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강민첨 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