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우-황산싸움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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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S김지선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9월 26일 (화) 00:4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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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우-황산싸움 관련 기사()
파일:민족기록화 일러 관련기사.jpg
김현승 일러스트레이터
대표명칭 오승우-황산싸움 관련 기사



정의

민족기록화 오승우-황산싸움 고증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은 기사

내용

오승우-황산싸움에서 계백은 전복으로 찰갑(札甲)을 입고 있는데,

일정한 크기의 작은 미늘을 수십 매에서 수백 매씩 가로 또는 세로로 엮어 만들어 활동성을 극대화시켰으

비늘갑옷은 삼국시대 이후 줄곧 사용된 갑옷이다.

강유신, "비늘갑옷"

그러나, 백제시기 출토된 갑옷은 단갑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곽재우는 그의 아버지인 곽월(郭越)이 명나라에 동지사(冬至使)로 갔을 때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의 철릭(帖裏)을 입고 정암진싸움에 임했다고 한다.

Quote-left.png 재우는 그 아비가 명나라 북경에 갔을 때에 황제가 하사한 붉은 비단 철릭을 입고서, 지금 장사(將士)들을 거느리고 의령현의 경내 및 낙동강 가를 마구 누비면서 왜적을 보면 그 수를 불문하고 반드시 말을 달려 돌격하니, 화살에 맞는 적이 많아서 그를 보면 바로 퇴각하여 달아나 감히 대항하지 못합니다. Quote-right.png
출처: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조선왕조실록』online, 국사편찬위원회.[1]


철릭은 저고리와 치마가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 허리 아래를 넓게 한 치마에 잔주름이 잡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2] 그러나 김태의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속에 묘사된 곽재우철릭 형태의 군복을 입고 있지 않다.

전복의 복장이 사실과 다름. 이는 고구려벽화 신라의 토기유물, 조선시ㅐ드이 복식자료등을 미루어 볼 때 고쳐야 함.


병장들의 군복 관련 오류

왜군들은 붉은 옷을 입은 곽재우의 모습을 보고 그를 홍의 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렀는데, 곽재우는 이 점을 역이용하여 자신과 몸집이 비슷한 부하들을 가려 뽑아 붉은 옷을 입혀 자신으로 위장해 곳곳에 배치했다고 한다.[3]
그러나 실제 작품에는 모든 병장들이 붉은 군복을 입고 등장한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관련 기사 김태-홍의장군 곽재우 A는 B와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시각자료

가상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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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주석

  1.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년) 6월 28일. 온라인 참조: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의병이 일어난 일과 경상도 지역의 전투 상황을 보고하다', 『조선왕조실록』online, 국사편찬위원회.
  2. "철릭",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3. "곽재우는 이 점을 역이용하여...배치했다고 한다." : "곽재우-홍의(紅衣) 장군, 민초들의 지킴이",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문화콘텐츠닷컴』online, 한국콘텐츠진흥원.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1. 사료
  2. 웹 자원

유용한 정보

  1.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