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박태보가 이진사에게 보낸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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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유묵》 하첩에는 박태보(1654~1689) 명의로 보낸 간찰 6점이 실려 있다. 5점 은 겉봉의 수신처가 ‘李進士’ 또는 ‘伯翼兄’이라 씌어있어 자가 伯翼인 이진사에게 보 낸 간찰임을 알 수 있는데 인명은 자세하지 않다. 나머지 1점은 해서에 가까운 정갈 한 필치로 썼는데, 이 역시 상대방을 ‘台’라고 표기하여 정승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보낸 간찰임을 알 뿐 수신인은 알 수 없다. 정승에게 보낸 간찰이 단순한 문안편지인 것에 비해 행초로 씌어있는 5점은 부친 박세당의 영정을 그리는 일과 관련되는 것으 로 추정되는 간찰이라 회화사적으로 주목을 받는 자료이다. 영정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과 재료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과 함께 영정을 그릴 畵師 를 당시 명성이 있던 평양화가 曺世傑(1635~?)로 결정하려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 내 용에 따르면 수신인 이진사는 박태보에게 조세걸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영정 제작에 관한 제반 사항을 주선한 인물로 보이는데, 그 인명이 명확하지 않은 점이 아 쉬움으로 남는다.25) 이진사에게 보낸 5점의 간찰 중 앞의 2점은 유려한 행초로 씌어있다(도 8). 아버지 박세당의 행초 필적에 비해 둥글게 돌아가는 원필세의 흐름이 더욱 돋보인다. 이를 윤 순거와 조속의 글씨와 비교하면 윤순거의 호방하고 자유분방한 필치와 조속의 깔끔 하고 단아한 필치를 섞어놓은 듯한 운필을 보여 외가쪽으로부터 전승되어 온 서풍이 박태보의 글씨에 절충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25)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거주지가 평양이라는 점과 대대로 사환을 지속한 집안이라는 근거를 들어 이진 사를 昌謙(1645~?)으로 추정한 사례가 있다(김학수, 2012, 앞의 논문, 29~30쪽 참조). 이러한 추정은 이창 겸의 자가 ‘伯益’이라는 점이 전제된 것인데, 첫 번째 간찰 피봉에는 수신인이 伯翼兄이라고 씌어있고 다섯 번 째 간찰에는 피봉이 아닌 편지 내용 중에 ‘伯益兄’이라고 되어 있어 동일인인지 여부가 의심된다. 다섯 번째의 간찰 내용 중 영정을 그리는 일이 현재 실마리가 잡혀가고 있다는 내용과 아울러 “이 일은 伯益兄에게 전적으 로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현재 편지를 보내는 상대방을 보고 伯益兄이라 부른 것이 아 니라 제 삼자인 伯益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이진사를 이창겸으로 보기위해서는 이 러한 의문이 차제에 해결되어야 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