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패
범패 (塔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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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범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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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塔碑 |
정의
불교의 의식음악. 일명 범음(梵音)·어산(魚山) 또는 인도(印度, 引導) 소리라고도 한다.[1]
내용
절에서 주로 재(齋)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이며, 가곡·판소리와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성악곡 중의 하나이다. 범패는 장단이 없는 단성선율(單聲旋律)이며, 재를 올릴 때 쓰는 의식음악이라는 점에서 서양음악의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와 비슷하다.
역사
보통 우리 나라의 범패는 신라의 진감선사(眞鑑禪師)에서 비롯된 것같이 되어 있다. 진감선사는 하동 쌍계사(雙磎寺)의 진감선사대공탑비문(眞鑑禪師大空塔碑文)에 의하면 804년(애장왕 5) 재공사(才貢使)로 당나라에 갔다가 830년(흥덕왕 5)에 귀국한 뒤, 옥천사(玉泉寺), 즉 쌍계사에서 수많은 제자들에게 범패를 가르쳤다. 그러나 범패가 그 전에도 우리 나라에 있었다는 것은 ≪삼국유사≫월명사(月明師)의 도솔가조(兜率歌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즉, 760년(경덕왕 19)에 하루는 해가 둘이 떠서 서로 교대하여 해가 지지 않는 괴변이 생겼다. 이때 일관이 말하되 “범패승을 데려다가 <산화공덕 散花功德>이라는 노래를 부르면 괜찮을 것이라.” 하여, 왕이 단을 쌓고 범패승을 기다렸다. 그때 월명이라는 승려가 지나가므로 왕이 불러 범패를 부르라 하니 그 승려는 오직 향가만을 알 뿐 범패를 모른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진감선사 이전에도 범패를 부를 줄 아는 승려가 따로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진감선사와 같은 시대 사람인 일본 승려 원인 자각대사(圓仁慈覺大師)가 쓴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에 의하면, 중국 산동반도 등주(登州)의 적산원(赤山院)이라는 신라인의 절에서 불린 범패가 당풍(唐風)과 향풍(鄕風:新羅風), 그리고 당나라 이전에 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고풍(古風:日本風), 이렇게 세 가지 유형의 범패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배워 온 범패란 이 가운데 당풍이었다고 하겠다. 현행 홋소리의 선법도 옛날 신라의 영토였던 동부지방 민요의 그것과 같다. 고풍의 범패는 당풍이나 향풍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당풍 범패 이전에 서역에서 들어온 범패일 것 같다. 고려는 불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범패가 상당히 성행하였으리라고 짐작은 되나 문헌이 없어 잘 알기 어렵다. 다만 고려의 역대 왕들이 연등회(燃燈會)를 성대히 행했으며, 백좌도량(百座道場)을 왕궁에 설하고 대규모의 도량을 설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범패도 성행하였으리라고 추측된다. 조선시대의 범패는 대휘화상(大輝和尙)이 쓴 ≪범음종보 梵音宗譜≫(1748)에 의하여 상세한 계보를 찾아볼 수 있다. 국융(國融)-응준(應俊)-혜운(惠雲)-천휘(天輝)-연청(演淸)-상환(尙還)-설호(雪湖)-운계당법민(雲溪堂法敏)-혜감(慧鑑)-순영(絢暎) 등 많은 범패승의 이름이 보인다. 이 밖에 ≪신간산보범음집 新刊刪補梵音集≫(1713) 등에도 상당히 많은 범패승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11년 6월에 사찰령이 반포되고 그 취지에 따라 이듬해에 각본말사법(各本末寺法)이 제정되자 조선 승려의 범패와 작법(作法)이 금지되었다. 화청과 법고춤 같은 것을 금한 각본말사법 시행 이후 범패도 쇠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행히 망하여 없어지지는 않았다. 경만 읽고 범패를 부르지 않는 절에는 재가 들어오지 않아, 재가 있는 한 범패는 존속하였다. 다카하시(高橋亨)의 ≪이조불교 李朝佛敎≫(1929)에는 “근년까지 경성 교외 백련사(白蓮寺)에 만월(滿月)이라는 노승이 있어 범패로 유명하였다. 원래 경성의 동서산(東西山)에 각각 만월이 있어 선성(善聲)이 서로 백중하였다. 이만월은 즉 서만월(西滿月)이라고 한다.” 라고 적고 있다. 백련사 이만월(李滿月)의 제자로는 백련사의 이범호(李梵湖), 봉원사(奉元寺)의 이월하(李月河), 진관사(津寬寺)의 김운제(金雲濟)가 있었고, 동교(東郊)의 이만월의 제자로는 경국사(慶國寺, 靑庵寺)의 대원(大圓)과 영도사(永度寺, 開雲寺)의 전우운(田雨雲), 신흥사(新興寺)의 완담(完潭), 화계사(華溪寺)의 동화(東華), 흥국사(興國寺)의 표금운(表錦雲) 등이 있었다. 범패는 주로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시왕각배재(十王各拜齋)·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수륙재(水陸齋)·영산재(靈山齋) 등 다섯 가지 재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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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이완우, "탑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