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계광업소
도계광업소(大韓石炭公社 道溪鑛業所) | |
대표명칭 | 도계광업소 |
---|---|
한자표기 | 大韓石炭公社 道溪鑛業所 |
유형 | 정부투자기관 |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도계리 255 |
창립일 | 1936년 |
주요업무 | 석탄업 |
웹사이트 | 대한석탄공사 |
목차
정의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도계리에 있는 무연탄 광산.
내용
설립
삼척탄전 북동단의 도계읍을 중심으로 하는 도계지구에 속하는 무연탄 광산으로,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삼척개발주식회사가 개광한 삼척탄광을 모태로 한다. 삼척탄광은 광복 후 1950년에 출범한 대한석탄공사에 이관되었으며, 탄광의 규모가 커지자 1951년 도계광업소와 장성광업소로 분리되었다. 이후 도계광업소는 1987년 도계갱과 동덕갱, 흥전갱, 나한갱, 점리갱 등으로 분리되어 운영되다가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정책이 시행된 뒤 1990년 2월 점리갱이 폐쇄되었고, 1994년부터 흥전갱과 나한갱이 통합되어 도계생산부·동덕생산부·중앙생산부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1]
탄광의 변화
1950년대 이후 상장탄광, 흥국탄광(지금의 경동광업소) 등과 함께 강원도 내 석탄 생산량의 32%를 차지하는 중요한 석탄 산지가 되었으며, 1975년까지 서독에 파견하는 광부들의 훈련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탄광을 중심으로 광산 취락도 발달하여 1950~1960년 사이에 인구가 세 배 이상 급증하였으며, 1963년에는 도계리가 도계읍으로 승격하였다. 1978년에는 흥전리에 3층 연립의 희망아파트가 건립되었는데, 이는 탄광촌 아파트형 사택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석탄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광업소의 규모도 축소되고 탄광촌에도 공동화 현상이 진행되었다.[2]
매장량
개광 이래 2014년까지 총 4126만 9787t을 생산하였으며, 2015년에는 32만t을 생산하였다. 2014년을 기준으로 16개 광구(총 면적 52.81㎢, 갱도 길이 130㎞)가 있으며, 이 가운데 6개 광구에서 채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4개 광구는 채굴이 종료되었고, 나머지 6개 광구는 채굴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무연탄의 총 매장량은 4700만t이며, 이 가운데 기술적·경제적으로 캐낼 수 있는 가채매장량은 2900만t이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대한석탄공사 | 도계광업소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
삼척탄광 | 도계광업소 | A는 B의 전신이다 | A ekc:isOldNameOf B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갱내(坑內)로 들어가는 광부들 모습 [4]
갱내(坑內)에서 캔 석탄을 밖으로 운반하는 광부 모습 [5]
갱내(坑內)에서 채탄(採炭)작업하는 광부들 모습 [6]
광업소 소속 광부의 모습 [7]
영상
- 중앙일보 - 여기는 지하 557m, '세상의 막장' 탄광 속을 기자가 직접 내려가봤더니(게시일: 2016년 6월 18일)
주석
- ↑ "도계광업소",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 "도계광업소",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 "도계광업소",
『doopedia』online , 두산백과. - ↑ "국가기록원 (1962년 7월 23일 촬영)"
- ↑ "국가기록원 (1962년 7월 23일 촬영)"
- ↑ "국가기록원 (1962년 7월 23일 촬영)"
- ↑ "국가기록원 (1962년 7월 23일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