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서
여사서 | |
한자명칭 | 女四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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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A copied version of some parts of the Korean annotation of Yeosaseo (Four Books for Women) for the education of royal women. |
작자 | 이덕수 |
간행시기 | 19세기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청구기호 | 3-100 |
유형 | 고서 |
크기(세로×가로) | 22.0×17.8㎝ |
판본 | 필사본 |
수량 | 1첩 |
표기문자 | 한글 |
개요
1736년(영조12) 영조가 홍문관 제학 이덕수(李德壽, 1673~ 1744)에게 언해하도록 명하여 간행한 『여사서(女四書)』 중 언해 부분만 일부 필사하여 왕실 여성의 교육을 위해 엮은 책이다.
내용
1736년(영조12) 영조가 홍문관 제학 이덕수(李德壽, 1673~ 1744)에게 언해하도록 명하여 간행한 『여사서(女四書)』 중 언해 부분만 일부 필사하여 왕실 여성의 교육을 위해 엮은 책이다. ‘여사서’라는 제목은 사대부 남성의 필독서인 ‘사서(四書: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 상대되는 말로, 여성이 반드시 읽어야 할 네 권의 책이라는 의미이다. 청나라 왕진승(王晉升)은 여성이 읽어야 할 책으로, 후한(後漢) 조대가(曹大家)의 『여계(女戒)』, 당나라 송약소(宋若昭)의 『여논어(女論語)』, 명나라 인효문황후(仁孝文皇后)의 『내훈(內訓)』, 명나라 강녕유씨(江寧劉氏)의 『여범(女範)』 등을 편집하여 4권 3책의 『여사서』를 편찬하였다. 영조는 청에서 들어온 『여사서』를 언해하도록 했는데, 언해 순서는 『여계』, 『여논어』, 『내훈』, 『여범』 순으로 하였다. 언해 방식은 원문에 독음과 구결을 단 후에 한 칸 낮추어 언해를 첨부하였다. 언해는 정자체로 썼다. 이 필사본은 『여계』, 『여논어』는 궁체 흘림으로 『내훈』은 반흘림이 섞인 궁체 흘림으로 쓰였다. 이 필사본은 한글 서체연구 자료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온전한 궁체로 쓴 것으로 보아 왕실 여성의 교훈서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1737년 간행본 『여사서』 4권 3책에서 1~3권의 한글부분만 흘림체로 필사하였으며, 표기 양식은 대체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4권 2책의 1907년 간행본 『여사서』가 있는데, 이는 전우(田愚)가 국문으로 번역한 뒤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이 서문을 쓴 것으로, 책의 구성과 번역 내용 등에 있어 1736년 간행본과 차이가 크다. [1]
관련항목
중심 | 연결정보 | 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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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서 | 편찬자 | 이덕수 |
여사서 | 인물 | 영조 |
여사서 | 인물 | 왕진승 |
여사서 | 인물 | 조대가 |
여사서 | 인물 | 송약소 |
여사서 | 인물 | 강녕유씨 |
여사서 | 인물 | 전우 |
여사서 | 인물 | 송병순 |
여사서 | 문헌 | 여논어 |
여사서 | 인물 | 내훈 |
여사서 | 인물 | 여범 |
조대가 | 집필자 | 여계 |
송약소 | 집필자 | 여논어 |
인효문황후 | 집필자 | 내훈 |
강녕유씨 | 집필자 | 여범 |
여사서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시간정보
중심 | 시간정보명 | 시간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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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서 | 간행년 | 19세기 |
공간정보
중심 | 연결정보 | 공간정보이름 | 경도 | 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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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서 | 소장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37.39197 | 127.054387 |
참고문헌
주석
-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글 - 소통과 배려의 문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6.06.28, 1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