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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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일(金富佾) | |
대표명칭 | 김부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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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金富佾 |
생몰년 | 1071년(문종 25)-1132년(인종 10) |
본관 | 경주(慶州) |
시호 | 문간(文簡) |
자 | 천여(天與) |
시대 | 고려 |
부 | 김근(金覲) |
정의
고려 중기의 문신.
내용
김부일(金富佾)은 김근(金覲)의 둘째 아들로, 김부식(金富軾)과 김부의(金富儀)의 형이자, 김부필(金富弼)의 동생이다.
김부일은 어려서 문과에 급제하여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다. 추밀원사 왕가(王嘏)를 따라 송나라에 가서 명문(名文)을 지음으로써 송나라 철종의 찬사를 받았다. 숙종 때 습유(拾遺)·지제고(知制誥)를 거쳐 원주·상주의 지방관을 역임하여 훌륭한 치적을 남겼다.[1] 예종 때 예부낭중(禮部郎中)이 되었는데, 요나라가 여진을 치려고 원병을 청해오자, 군신들이 모두 찬성하였다. 그러나 김부식, 한충(韓冲), 척준경(拓俊京) 등과 함께 윤관(尹瓘)이 여진을 정벌한 뒤라 군민(軍民)의 휴식을 위해서도 불가하며, 다른 나라를 위해 군사를 내는 것이 국익에 어긋난다고 반대하였다.[2] 직학사(直學士)에 올라 왕을 비롯하여 보문각(寶文閣) 유신들과 경사(經史)를 강론하여 이름을 떨쳤고, 인종이 왕위에 오르자 크게 등용되어 벼슬이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를 거쳐 수태위(守太慰)·비서성사(秘書省事)·주국(柱國)에 이르렀다.[3]
비문의 찬자
김부일(金富佾)이 지은 비문으로는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陜川 般若寺址 元景王師碑)가 있다.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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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 김부일 |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 A ekc:writer B |
김부일 | 김부필 | A는 형제 B가 있다 | A ekc:hasBrother B |
김부일 | 김부일 | A는 형제 B가 있다 | A ekc:hasBrother B |
김부일 | 김부일 | A는 형제 B가 있다 | A ekc:hasBrother B |
주석
- ↑ "김부일",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박성봉, "김부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인명사전편찬위원회, 『인명사전』, 민중서관, 2002. 온라인 참조: "김부일", 인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