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영주 부석사 조사당

Encyves Wiki
최한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9월 4일 (월) 14:08 판 (시각자료)

이동: 둘러보기, 검색
영주 부석사 조사당
(榮州 浮石寺 祖師堂)
대표명칭 영주 부석사 조사당
한자표기 榮州 浮石寺 祖師堂
영문명칭 Josadang Shrine of Buseoksa Temple, Yeongju
시대 고려시대
지정번호 국보 제19호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소장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관련장소 영주 부석사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浮石寺)에 있는 고려시대 전각.

내용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9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맞배지붕 주심포계(柱心包系) 건물이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국사(義湘國師)의 초상화를 모시고 있다.

건물은 석재(石材)를 난적(亂積)한 낮은 기단(基壇) 위에 서 있으며, 중앙에 석계(石階)를 두었다. 고려시대의 다른 건물에 비하면 기둥에 나타난 배흘림이 약화되었고 기둥머리에 헛첨차를 끼워 두공(枓栱 )을 받치고 있다. 주두(柱頭)와 소루(小累)에는 굽받침이 없고, 외목도리(外目道里) 밑의 장설(長舌)도 단장설(短長舌)이 아닌 통장설로 되어 있어 조선 전기의 주심포계 건물과 같은 점이 많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이 있으며, 좌우로는 창을 설치해 놓았다.

1916년의 수리공사 때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으로 미루어 건립연대는 1377년(고려 우왕 3)으로 추정되며, 조선 성종 21년(1490)과 성종 24년(1493)에 다시 고쳤다. 또한 이 건물 내부에는 보살상·사천왕상(四天王像) 등이 그려진 벽화(국보 46)가 있었는데, 현재는 이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어내어 안전장치를 한 후에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 안에 보관하고 있다.[1]

국보 제19호. 고려 말기 또는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 건축물로서 내부에 부석사의 창건주인 의상스님의 상(像)을 봉안하고 있다. 본래 벽면에는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그린 6폭의 벽화(국보 제46호)가 있었다. 이 벽화들은 무량수전 안에서 보관하다가 지금은 유물전시관인 보장각(寶藏閣)에서 전시하고 있다. 조사당 앞 처마 밑에는 의상스님이 사용하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자라났다는 전설이 깃든 골담초가 있다.

부석사 조사당은 창건연대가 확실하지 않다. 장여(長欐)에 기록된 묵서(墨書)에 따르면 1377년(우왕 3) 원응(圓應)국사가 다시 세웠고, 1490년(성종 21)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사당은 부분적인 보수만 있었을 뿐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573년(선조 6)에는 지붕을 보수하였으며 1709년(숙종 32)에는 기와를 교체하였다. 1916년에 해체 수리가 이루어졌는데 이때 장여에서 고려시대 중건과 조선 초기의 공사 내용이 기록된 묵서(墨書)가 발견되었다. 1985년에는 벽화를 모사하여 복원하였으며, 1994년에 벽화전시관을 건립하였다. 1996년에는 서까래와 기와를 교체하였고, 2005년에 도리 등 부식된 목재와 함께 기와를 교체하였다.[2]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시각자료

영상

주석

  1. "영주 부석사 조사당", 『두산백과』online.
  2. 홍승재, "영주 부석사 조사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