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월광사지
제천 월광사지 (堤川 月光寺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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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제천 월광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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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堤川 月光寺址 |
주소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산9 |
문화재 지정번호 | 기념물 제154호 |
문화재 지정일 | 2012년 11월 2일 |
창건자 | 도증(道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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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있는 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절터.
내용
역사
월광사(月光寺)는 신라 효소왕 때의 승려 도증(道證)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구산선문 가운데 성주산문(聖住山門)을 개창한 낭혜화상 무염(無染)의 제자인 원랑선사 대통(圓朗禪師 大通)가 머물렀던 곳이다.[1]
월광사는 법상종 계열로 존속하다가 경문왕 때에 대통이 선사상을 전파하면서 선종계 사찰로 바뀌었다. 절터 초입 송계계곡에서 고려 시대에 제작된 대불정주비(大佛頂呪碑)가 발견되어 고려 시대에도 선종 계통의 사찰로 법맥을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절터에서 조선 시대 기와편과 백자편이 수습되는 점을 볼 때 조선 전기까지 존속하다가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2]
월광사 경내에 있던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月光寺圓朗禪師大寶禪光塔碑)」는 1922년에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 절터에는 석재와 석축이 남아 있고, 고려와 조선시대의 기와·자기 조각 등이 산재해있다.[3]
현황
제천 월광사지 북서쪽에는 무너져 있는 부도 석재들이 주변에 널려 있고, 동쪽에는 현재 경복궁에 있는 보물 제360호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가 본래 서 있었던 자리를 알려주는 표석이 있다. 절터의 평면적인 형태는 동서 방향으로 약간 긴 장방형이고, 약 3,636㎡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각각의 평탄 대지 사이에는 석축이 축조되어 있는데 건물 조영에 따른 평탄 대지의 확보와 토양의 무너짐을 방지하고자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에도 많은 석축들이 있으나 대부분이 교란되었고 원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는 석축은 6곳뿐이다. 석축은 지형적으로 북쪽은 높고, 남쪽은 낮은 형상을 이루고 있다. 부도석재군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약 100m 가면 오른쪽에 완만한 경사지에 자리한 무덤 1기가 있는데 이곳에도 여러 부도 석재가 남아 있다.[4]
관련문화유산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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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 | 제천 월광사지 | A는 B를 창건하였다 | |
대통 | 제천 월광사지 |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 |
제천 월광사지 원량선사탑비 | 국립중앙박물관 | A는 B에 있다 | |
제천 월광사지 | 제천 월광사 | A는 B의 터이다 |
시각자료
주석
- ↑ "월광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인한, "제천 월광사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월광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김인한, "제천 월광사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