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명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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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명빈찬 (臨軒命賓贊) |
|
대표명칭 | 임헌명빈찬 |
---|---|
한자표기 | 臨軒命賓贊 |
유형 | 의례 |
관련개념 | 가례(관례) |
정의
왕이 편전(便殿)에 나와 왕세자 관례의 빈(賓)과 찬(贊)을 임명하는 절차이다.[1] 왕이 참석하지 않으면 ‘명빈찬(命賓贊)’이라하는데, 정조는 순조의 관례에 세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의 간략함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2]
내용
1일 전에 어좌(御座)를 설치하고, 당일에 문관 1품 이하의 자리와 종친 및 무관 1품 이하의 자리를 설치하고, 빈(賓)과 찬(贊)이 왕의 명령을 받는 자리도 설치한다. 초엄(初嚴)이 울리면 종친과 백관 및 빈 이하는 조복을 갖춘다. 이엄(二嚴)이 울리면 왕은 조복인 원유관에 강사포를 갖춘다. 삼엄(三嚴)이 울리면 집사관과 종친과 백관이 정한 자리로 나아가고, 왕이 여(輿)를 타고 나온다. 왕이 어좌에 올라가면 전교관(傳敎官)이 어좌 앞으로 나아가서 전교(傳敎)를 아뢰고, 내려가서 빈의 동북쪽으로 나아가 서향으로 서서 전교(傳敎)를 알린다. 전교관이 교서함을 빈에게 주고, 빈이 교서함을 안(案)에 놓고, 안을 든 자가 안을 들고 나가면 빈과 찬이 따라간다. 좌통례가 예가 끝났음[禮畢]을 아뢰면 왕이 돌아가고, 종친과 백관도 관례를 치룰 장소로 이동한다.[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
왕세자 | 임헌명빈찬 | A는 B를 거행한다 |
왕 | 임헌명빈찬 | A는 B를 참여한다 |
백관 | 임헌명빈찬 | A는 B를 참여한다 |
관례 | 임헌명빈찬 | B는 A에 포함된다 |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國朝五禮儀』 卷3, 「吉禮」, ‘王世子冠儀’
- ↑ 박나연, 「正祖代 후반 王世子 冊封禮와 그 意義」,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14쪽.
- ↑ 『國朝五禮儀』 卷3, 「吉禮」, ‘王世子冠儀’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주자가례(朱子家禮)』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강옥수, 「조선시대 의례서에 나타난 관, 계례 연구」, 원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 권오영 외 5명, 『조선 왕실의 嘉禮 0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김문식ㆍ김정호, 『조선의 왕세자 교육』, 김영사, 2003.
-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 일지사, 2000.
- 김지영ㆍ김문식 외 4명, 『즉위식, 국왕의 탄생』, 돌베개, 2013.
- 戴龐海, 『先秦冠禮硏究』, 中州古籍出版社, 2006
- 박나연, 「正祖代 후반 王世子 冊封禮와 그 意義」,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 심재우·임민혁·이순구외 2명, 『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 돌베개, 2013.
- 안애영, 「임오년 가례 왕세자, 왕세자빈 복식 연구」, 단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 유송옥, 이민주, 「특집 전통생활문화의 현대적 조명-효명세자 책례, 관례, 의식 및 복식에 관한 연구」, 『생활과학 1』,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1998
- 육수화, 『조선시대 왕실교육』 , 민속원, 2008.
- 이명은, 「궁중발긔에 나타난 행사 및 복식 연구」,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최연우 외, 『장서각 소장 ‘의례등록(儀禮謄錄)’ 자료의 탈초, 역주 및 현대화』,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