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월남사지
강진 월남사지 (康津 月南寺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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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강진 월남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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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Wollamsa Temple Site, Gangjin |
한자 | 康津 月南寺址 |
주소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4 |
문화재 지정번호 | 전라남도 기념물 제125호 |
문화재 지정일 | 1988년 12월 21일 |
관리자 | 강진군 |
건립시기 | 고려시대 |
창건자 | 혜심(慧諶) |
경내문화재 |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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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에 있는 절터.
내용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기념물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33,106㎡이고 월출산을 배경으로 월남마을 중앙에 있다.[1]
월남사(月南寺)의 창건을 밝힐 수 있는 확실한 문헌은 전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고려승 진각초창 유이규보비(高麗 僧眞覺初創 有李奎報碑)’라 하여 송광사(松廣寺) 제2세인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보면 월남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선시대 임진왜란·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소실되고 그 뒤 복원불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17세기 중반 이미 폐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2]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양쪽편으로 삼층석탑(三層石塔)과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가 있다. 최근에 삼층석탑 근처 민가에서 석탑의 지붕돌이 발견되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2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한다.[3] 이로 보아 삼층석탑과 또 하나의 석탑이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발견된 옥개석의 세부 기법이 삼층석탑 양식과 다른 신라의 양식과 기법을 따르고 있어,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같은 절터에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이 공존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4] 진각국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운 진각국사비는 비석의 위쪽이 깨져 없어졌고, 앞면 일부도 떨어졌으나 남아있는 바닥돌과 거북의 기세, 비석의 폭으로 보아 매우 웅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금당터 초석, 축대가 남아있으며, 옛 기와, 청자, 백자조각이 츨토되고 있다.[5]
월남사지의 전체 규모는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였던 것 같다. 현재 외곽 담장의 흔적이 잘 남아 있는데 동서방향인 전면의 길이가 175m, 남북방향인 측면의 길이가 185m로서 총면적은 1만여평에 달하고 있다.[6]
지식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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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남사 | 혜심 | A는 B가 창건하였다 | |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 강진 월남사지 | A는 B에 있다 | |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 혜심 | A는 B를 위한 비이다 | |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 강진 월남사지 | A는 B에 있다 |
시각자료
영상
- the 9594, "월출산 월남사지 삼층석탑, 강진 여행", YouTube, 게시일: 2016년 4월 10일.
- 여수MBC News+,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복원-R (170725화/뉴스투데이)", YouTube, 게시일: 2017년 7월 24일.
주석
- ↑ "월남사지",
『두산백과』online . - ↑ 이영문, "월남사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강진 월남사지",
『위키백과』online . - ↑ "월남사지",
『두산백과』online . - ↑ "강진 월남사지",
『위키백과』online . - ↑ 이영문, "월남사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