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기요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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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 |
대표명칭 | 가토 기요마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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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加藤淸正 |
생몰년 | 1562년-1611년 |
이칭 | 가등청정(加藤淸正), 호지조(虎之助), 가토 도라노스케(加藤虎之助) |
유형 | 일본인 |
정의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장수로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의 무장.[1]
내용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측근 장수로서 그를 따라 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 때에는 제2군의 장수로 조선을 침략했다. 한성에 입성한 후 함경도로 전진하여 임해군과 순화군 두 왕자와 일행을 인질로 사로잡았다. 강화교섭기에는 울산에 주둔하면서 조선의 사명대사 유정(惟政)과 교섭하기도 했다. 강화교섭 결렬 후 조선을 다시 침략했다. 조명연합군이 그의 진지 울산성을 공격한 울산성 전투에서 고전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 관원 전투) 때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동군에 속하여 구주(九州)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성을 공격했다.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강한 경쟁심을 품고 있었으며 두 사람은 임진왜란과 세키가하라 전투 때까지 지속적으로 갈등관계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자신의 영지 구주(九州) 웅본(熊本) 지역에서는 축성술과 치수로 이름을 남겼다.[2]
지식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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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주석
- ↑ 한국사사전편찬회, 『한국고중세사사전』, 가람기획, 2007. 온라인 참조: "가토 기요마사", 한국고중세사사전,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김경태, "가등청정(加藤淸正)",
『조선왕조실록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