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영주 비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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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8월 19일 (토) 19:4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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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비로사
(榮州 毘盧寺)
대표명칭 영주 비로사
한자 榮州 毘盧寺
경내문화재 영주 비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영주 비로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영주 비로사 아미타후불탱화, 영주 비로사 진공대사 보법탑비, 영주 비로사 삼가동석조당간지주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소백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1]

내용

통일신라시대 진정(眞定)이 창건한 화엄종 절로서 신라 말에는 소백산사(小白山寺)라고도 불리었다. 가난으로 인하여 장가도 들지 못한 채 홀어머니를 봉양하던 진정은 의상(義湘)이 태백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교화한다는 소문을 듣고 출가하여 의상의 문하에서 화엄학을 공부하였다. 3년 뒤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7일 동안 선정(禪定)에 들었다가 그 소식을 의상에게 전하였다. 진정의 지극한 효성에 감동한 의상은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문도를 거느리고 소백산 추동(錐洞)으로 가서 초가를 짓고 제자 3,000명을 모아 90일 동안 『화엄경』을 강의하였다. 강의가 끝나자 그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나는 벌써 하늘에 환생(還生)했다.”고 하였다 한다.[2]

그가 937년(태조 2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태조는 진공대사라는 시호와 함께 보법(普法)이라는 탑호(塔號)를 내려주었다.[3]

1126년(인종 4)에는 왕이 김부식(金富軾)으로 하여금 불아(佛牙)를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고, 1385년(우왕 11)에는 환암(幻庵)이 중창하였다.[4]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석불상 2구만 남고 모두 불타버린 뒤 1609년(광해군 1) 경희가 중건하였다. 이어 1684년(숙종 10) 월하가 법당과 산신각 등을 중창하였고 1907년 범선이 요사를 증축하였는데, 1908년 법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버렸다. 1919년 희방사 주지 범선(泛船)이 법당을 중수하였고 1927년 요사를, 1932년 다시 법당을 중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새로 지은 법당과 요사채뿐이지만, 진공대사보법탑비(경북유형문화재 4)와 석조당간지주(경북유형문화재 7),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996) 등 중요한 유물들이 남아 있다.[5]


지식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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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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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김상현, "비로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2. 김상현, "비로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김상현, "비로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김상현, "비로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5. "비로사", 『두산백과』online.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