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현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8월 16일 (수) 00:46 판
지공(指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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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지공 |
한자 |
指空 |
생몰년 |
?-1363년 |
호 |
지공(指空) |
휘 |
제납박타(提納薄陀), 선현(禪賢), dhyāna-bhadra(산스크리트어) |
출신지 |
인도 마갈타국(摩羯陀國) |
승탑 |
지공선사부도및석등 |
승탑비 |
양주회암사지공선사부도비 |
정의
고려 시대의 인도 승려.
내용
가계와 탄생
지공은 인도 출신의 승려이다. 본명은 산스크리트어 dhyāna-bhadra, 제납박타(提納薄陀)라고 음사, 선현(禪賢)이라 번역한다. 중인도(中印度)지역의 마갈타국왕(摩竭陀國王) 만(滿, pūrṇa)의 셋째 아들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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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증조의 휘(諱)는 사자협(師子脇)이고 나의 조(祖)의 휘는 곡반(斛飯)이며 모두 가비라국(伽毗羅國)의 왕이다. 나의 아버지의 휘는 만(滿)이며 마갈제국(摩竭提國)의 왕이다. 나의 어머니는 향지국공주(香志國公主)이며, 나의 두 형은 실리가라파(悉利伽羅婆)와 실리마니(悉利摩尼)이다. 나의 부모가 동방(東方)의 대위덕신(大威德神)에게 기도하여 나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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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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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수행
8세에 나란타사(那爛陀寺)의 율현(律賢, vinaya-bhadra)에게 출가하여 대반야경(大般若經)을 배운다. 19세에 남인도 길상산(吉祥山)에 가서 보명(普明, samanta-prabhāsa)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아 서천(西天) 제108조(祖)가 되고, 호(號)를 지공(指空, śūnyā-diśya)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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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때에 스승에게 가서 나라의 글과 외국의 학문을 배웠으며, 대강 그 대의(大義)만을 깨닫고는 버리었다. 아버지가 병이 들었는데 의약(醫藥)의 효력이 없었다. 점치는 자가 말하기를, “적자(嫡子)가 중이 되면 임금이 병이 완쾌될 수 있습니다.” 하였다. 아버지가 세 아들에게 물었다. 내가 즉시 응낙하니 아버지가 크게 기뻐하여, 나의 아명(兒名)을 불러 말하기를, “누달라치파(婁怛囉哆婆)야 네가 능히 할 수 있느냐.” 하였다. 어머니는 내가 막내아들이라 하여 처음에는 매우 난처하게 여겼으나, 마침내 아쉬움을 참고 중으로 내주기를 원하게 되어서 아버지의 병이 금방 나았다. 8세에 삼의(三衣 비구가 입는 세 가지 옷, 즉 승가리(僧伽梨)ㆍ중의(重衣)ㆍ대의(大衣))를 잦추고, 나란타사(那蘭陁寺)의 강사(講師) 율현(律賢)의 문하에 보내어 머리를 깎고 오계(五戒)를 받게 하였다.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密多經)》을 배우다가 얻음이 있는 것 같아서 제불(諸佛)과 중생의 허(虛)와 공(空) 두 경계를 물으니 강사가 말하기를,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닌 것이 참 반야(盤若)인 것이다. 남인도(南印度)의 능가국(愣伽國) 길상산(吉祥山) 보명(菩明)에게 가면 심오한 뜻을 궁극히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그 때 나의 나이는 1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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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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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법유학
사자국(師子國)에 갔다가 북쪽으로 편력하여 서역(西域)을 거쳐 1324년경에 원(元)의 연경(燕京)에 도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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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공불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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