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남도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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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남도석성 (珍島 南桃石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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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진도 남도석성 |
---|---|
한자표기 | 珍島 南桃石城 |
유형 | 성곽 |
시대 | 고려 |
지정번호 | 사적 제127호 |
지정일 | 1964년 6월 10일 |
소장처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
관련인물 | 배중손 |
관련장소 | 진도 정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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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성곽.
설명
둘레 54m, 지정면적 20,169㎡. 성곽의 동측, 서측, 남측에 각각 문이 나 있으며 남문은 옹성이 감싸고 있다. 남문과 멀지 않은 곳에 해안선이 위치해 있으며, 과거에는 성벽 바로 밑까지 바닷물에 잠겼다고 한다.
남문 앞으로 흐르는 개울에는 쌍홍교와 단홍교라는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쌍홍교는 해방 직후에 마을 사람들이 놓았다고 하며, 물에 비친 그림자가 마치 안경과 같다 하여 안경다리라고도 불린다.
서문 앞쪽에는 여섯 명의 뛰어난 수군만호(水軍萬戶)를 기념하는 남도석성 만호비가 세워져 있다.
성곽 내부에는 옛 관아와 객사 등이 복원되어 있다.
대몽항쟁의 근거지
남도석성은 고려 원종 때 배중손이 삼별초와 함께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쌓은 성이라고도 전해진다. 남도석성과 멀지 않은 곳에 배중손이 몽고 연합군과 혈투를 벌이다 후퇴하여 죽음을 맞이한 장소가 위치해 있다. 현재는 해당 장소에 정충사라는 이름의 사당이 세워져 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실제로는 삼국시대에 이미 어느 정도 축성되어 있었을 것이라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백제 시대부터 진도에 이미 세 개의 고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은 조선 세종 때에 새로이 축조한 것이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남도석성 | 진도 | A는 B에 위치한다 | |
남도석성 | 배중손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남도석성 | 삼별초항쟁 | A는 B와 관련이 있다 | |
삼별초 | 남도석성 | A는 B를 건설하였다 | |
배중손 | 삼별초 | A는 B를 지휘하였다 | |
남도석성 | 진도 정충사 | A는 B와 인접해 있다 | |
진도 정충사 | 배중손 | B는 A에 배향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
34.364098 | 126.165931 | 남도석성은 진도에 위치해 있다. |
시각자료
가상현실
갤러리
영상
주석
- ↑ 민족기록화팀 촬영(2017년 4월 26일)
- ↑ 민족기록화팀 촬영(2017년 4월 26일)
- ↑ 민족기록화팀 촬영(2017년 4월 26일)
- ↑ 민족기록화팀 촬영(2017년 4월 26일)
- ↑ 민족기록화팀 촬영(2017년 4월 26일)
- ↑ 민족기록화팀 촬영(2017년 4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