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장락전
목차
정의
경희궁에 있는 전각으로, 대비의 생활공간으로, 행사를 위한 사용한 공간이기도 하다.[1]
내용
역사
경희궁의 북동쪽 영역에 위치해 남쪽으로는 경희궁 어조당이 있고, 서쪽으로는 경희궁 광명전이 있다. 대비가 머물러 생활하던 공간으로 1819년(순조 19) 신정왕후와 1844년(헌종 11) 효정왕후의 간택을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광해군 대에 지어졌고, 숙종대에 대대적인 수리를 하였다. 경희궁 봉상루(慶熙宮 鳳翔樓)와 경희궁 용비루(慶熙宮 龍飛樓)를 양쪽에 두어서, ㄷ자 형태의 건물을 이루고 있다. 경희궁 봉상루는 장락전의 우측에 있는 누각이다. 경희궁 봉상루 아래층을 경희궁 백상헌(慶熙宮 百祥軒)이라고 한다. 용비루는 장락전의 좌측에 있는 누각이다. 용비루 아래층을 경희궁 경의헌(慶熙宮 敬義軒)이라고 한다. 경희궁 경의헌은 세자가 경서를 강독하던 곳이다. 경희궁 장락전 앞마당에는 사각형의 연못이 있다. [2]
현재
1829년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경희궁의 전각을 복구한 『서궐영건도감의궤』에 경희궁 장락전을 찾아볼 수 없고, 1844년에 경희궁 장락전에서 간택을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경희궁 장락전은 경희궁에 있었던 화재를 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00년대 일제 침략이 시작되면서 경희궁은 황폐화되고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교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고의적으로 궁궐을 지형을 변형시켰다. 경희궁은 일제 침략기에 7만평 규모에서 3만평의 규모만 남아있는데 경희궁 장락전 또한 이 시기에 헐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1980년 9월 1일 경희궁의 터가 사적 제 271호로 지정되고, 1990년에는 경희궁 복원 공사가 착공되었으나 이미 고층 건물이 들어서 있기 때문에 일부 전각만 복원되어 완전한 복원은 기대하기 어렵다. [3]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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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장락전 | 순조 | A는 B의 빈전이다 | 1834년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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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11월 7일 | 순조는 경희궁 장락전에 빈전을 마련하였다 |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221쪽.
- ↑ 한국학진흥사업단 장락전
- ↑ 이근도, 『경희궁의 복원과 역사산책』, 도서출판 수서원, 2004, 67~77쪽.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이강근, 『한국의 궁궐』, 대원사, 1991.
- 이근도, 『경희궁의 복원과 역사산책』, 도서출판 수서원, 2004
- 이태호, 『그림으로 본 옛 서울』, 서울학연구소, 1995.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 한국학진흥사업단 장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