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경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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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창경궁에 있는 전각으로, 왕비나 세자빈 등 왕실 여성이 사용하던 전각이다.[1]
내용
건립 목적
왕비나 왕세자빈 등 왕실 여성이 생활하고 거주하던 공간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소혜왕후와 인현왕후, 혜경궁 홍씨가 승하하였고, 정조와 헌종이 탄생했다.[2]
역사
정면 7칸(19. 67m), 측면 4칸(9. 56m), 기둥높이 10척으로 1484년(성종 15)에 지어졌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불탄 것을 1616년(광해군 8)에 다시 지었다. 그 뒤 인조 때 일어난 이괄의 난을 겪으면서도 불타지 않고 보존되어오다가 1830년(순조 30)에 일어난 큰 불로 인하여 타버렸다. 이 후 1834년에 다시 지은 건물이 현재까지 보존되어오고 있다.[3]
현재
환경전과 경춘전은 번듯한 규모를 갖추고 있지만 부속건물은 모두 없어져 본채만 남아있다.[4] 민족항일기를 거치면서 변형되었고 이후 원형대로 복원하는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 지금은 바닥 전체가 마루로 되어 있다. 침전으로 사용하던 건물인만큼 온돌방을 옛 모습대로 복원해야 할 것이다.[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인현왕후 | 창경궁 경춘전 | A는 B에서 승하하였다 | |
혜경궁 홍씨 | 창경궁 경춘전 | A는 B에서 승하하였다 | |
정조 | 창경궁 경춘전 | A는 B에서 탄생했다 | |
헌종 | 창경궁 경춘전 | A는 B에 머물렀다 |
시간정보
시간 | 내용 |
---|---|
1701년 8월 14일 | 인현왕후는 창경궁 경춘전에서 승하하였다 |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237쪽.
-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226쪽.
- ↑ 한국민족대백과 창덕궁
-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237쪽.
- ↑ 한국민족대백과 창경궁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문영민, 『창경궁』, 대원사, 1991.
- 문화재관리국, 『창경궁 발굴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85.
- 이강근, 『한국의 궁궐』, 대원사, 1991.
- 이태호, 『그림으로 본 옛 서울』, 서울학연구소, 1995.
-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