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대승사
문경 대승사 (聞慶 大乘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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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문경 대승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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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聞慶 大乘寺 |
주소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사불산 |
교구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
건립시기 | 58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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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에 있는 절로 직지사(直指寺)의 말사.
내용
역사
대승사는 587년(진평왕 9)에 창건하였는데, 절이 창건된 시기는 신라에 불교가 국가적으로 공인된 지 70여 년이 지난 때였으므로, 대승사는 신라불교의 개척자와 같은 존재였고, 왕이 직접 행차하여 창건을 명하였으므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찰이었다.[1] 고려 고종 때 상주목사 최자(崔滋)는 대승사의 서남쪽에 있는 백련사(白蓮寺)를 새롭게 단장하였으며, 조선 초기 득통기화(得通己和, 1376-1433)가 이 절의 조전(祖殿)에 있으면서 『반야경(般若經)』을 연구하였고, 반야사(般若社)를 결성하여 후학들을 지도하였다.[2] 1644년(인조 22)과 1722년(경종 2)에 의현(義玄)·종수(鍾守) 등이 중수하였고, 1831년(순조 31) 구담(九潭)이 중창하였다. 1922년 대화재로 불타, 의운(義雲)·덕산(德山)이 복원시켰는데, 1956년 또 대화재가 발생, 명부전과 극락전만 남고 소실되어, 1966년 남인(南印)·대휴(大休) 등에 의해 삼창(三創)되었다.[3]
창건설화
대승사는 587년(진평왕 9)에 창건하였는데,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탑상(塔像)」의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四佛山 掘佛山 萬佛山)'조에 대승사 창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한다.[4]
죽령(竹嶺) 동쪽 1백리 가량 떨어진 마을에 높은 산이 있는데, 진평왕(眞平王) 46년 갑신(甲申)에 홀연히 사면이 한 발이나 되는 큰 돌에 사방여래(四方如來: 사방의 불국토에 사는 부처)를 조각하고 모두 붉은 비단으로 감싼 것이 하늘로부터 그 산 정상에 떨어졌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쳐다보고 예경한 후 드디어 그 바위 곁에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대승사(大乘寺)라 하였다. 『법화경(法華經)』을 외우는 이름이 전하지 않는 비구니를 청하여 절을 맡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돌을 공양하며 향불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그 산을 역덕산(亦德山)이라고 하며, 혹은 사불산(四佛山: 대승사가 위치한 산으로, 산 위 바위에 새겨진 사방불에 이하여 산 이름이 지어짐)이라고도 한다. 비구니가 죽자 장사지냈더니 무덤위에서 연(蓮)이 났었다. | ||
출처: "진평왕때 사불산에 사방여래가 떨어졌다", 삼국유사, |
관련암자
18세기 무렵 대승사에는 9개의 산내암자가 있었다. 미륵암(彌勒庵)·사불암(四佛庵)·상적암(上寂庵)·대비암(大妃庵)·묘적암(妙寂庵)·묘봉암(妙峰庵)·윤필암(閠筆庵)·문수암(文殊庵)·보현암(普賢庵) 등으로, 지금은 이 가운데 윤필암, 보현암, 묘적암, 총지암만이 남아있다.[5]
묘적암
윤필암
관련문화유산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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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주석
- ↑ 사찰문화연구원, "대승사", 『전통사찰총서 17 - 경북의 전통사찰IV』, 사찰문화연구원, 2001, 177쪽.
- ↑ 박상국, "대승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대승사",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online . - ↑ 사찰문화연구원, "대승사", 『전통사찰총서 17 - 경북의 전통사찰IV』, 사찰문화연구원, 2001, 177쪽.
- ↑ 사찰문화연구원, "대승사", 『전통사찰총서 17 - 경북의 전통사찰IV』, 사찰문화연구원, 2001, 190쪽.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