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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진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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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7월 14일 (금) 15:04 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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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진전사
(襄陽 陳田寺)
대표명칭 양양 진전사
한자 襄陽 陳田寺
주소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101
문화재 지정번호 강원도 기념물 제52호
문화재 지정일 1982년 11월 3일
소유자 양양 진전사
관리자 양양군
교구정보 대한불교조계종
건립시기 통일신라
창건자 도의(道義)
경내문화재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襄陽 陳田寺址 道義禪師塔),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襄陽 陳田寺址 三層石塔)



정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에 위치한 사찰이다.

내용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최소한 8세기 말경으로 추정된다. 이 절은 선종(禪宗)의 대찰로,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창시자로 알려진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중국의 당으로 유학갔다가 821년(헌덕왕 13) 귀국하여 오랫동안 은거하던 곳이다.[1] 당시 교종(敎宗)이 흥행하였던 신라 사회에서 선종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이 곳으로 들어와 40년 동안 수도하다가 입적하였다. 도의의 사상은 염거화상(廉居和尙)에게 전해지고, 다시 보조선사 체징(普照禪師 體澄)에게로 이어진다.[2]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지만, 고려 중기의 승려 일연(一然)이 진전사의 장로(長老)였던 대웅(大雄)의 제자가 되었던 것으로 보아 그 당시까지는 존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3]

진전사는 조선 세조 때까지는 건재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언제 폐사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는다. 폐사 시기가 《범우고(梵宇攷)》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16세기 경에 이미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4]

발굴조사 결과, 절 이름을 알 수 있는 ‘진전(陳田)’이란 글씨를 새긴 기와조각과 연꽃무늬 수막새기와, 당초무늬 암막새기와, 물고기무늬 기와 조각들이 출토되었다.[5]

현재 삼층석탑(국보 제122호)과 도의선사탑(보물 제439호)가 남아있다.[6]

사찰의 복원

현재 절터로 남아있는 이 곳은 1982년 ‘양양 진전사지’라는 명칭으로 강원도 기념물 제52호로 지정되었다. 2005년 진전사지에 진전사가 복원되었고, 2009년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7]

지식 관계망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 양양 진전사지 A는 B에 있다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양양 진전사지 A는 B에 있다
도의 양양 진전사 A는 B를 창건하였다
도의 양양 진전사 A는 B에서 주석하였다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 도의 A는 B를 위한 비이다

시간정보

시간정보 내용
8세기 말 양양 진전사도의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6세기 경 양양 진전사가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4-1979년 단국대학교 박물관에서 양양 진전사지를 발굴·조사하였다
1982년 양양 진전사지라는 명칭으로 강원도 기념물 제52호로 지정되었다
2005년 양양 진전사지진전사가 복원되었다
2009년 양양 진전사가 전통사찰로 지정되었다

시각자료

갤러리

답사 후 추가예정

영상

주석

  1. "양양 진전사지", 『두산백과』online.
  2. 신종원, "양양 진전사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3. 이지수, "진전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4. "양양 진전사지", 『두산백과』online.
  5. "양양 진전사지",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6. "양양 진전사지", 문화재검색, 『문화유산정보』online, 문화재청.
  7. 이지수, "진전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