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
정의
1946년 5월 해방후 처음 국내학자들이 발굴조사 한 경주 노서동 호우총(140호 고분)에서 출토된 고구려의 청동 그릇으로 주물로 만들었으며 보물 제1878호이다.
내용
그릇의 몸체는 높이 10.3㎝, 입지름 22.9㎝, 바닥 지름 15㎝이며 몸체의 최대 지름은 23.8㎝이다. 뚜껑은 높이 9.1㎝, 입지름 22.8㎝, 꼭지 높이 3㎝로, 합(盒) 모양 청동 용기 중에서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전체적으로는 옆으로 벌어진 납작한 모양이며 윗부분에서 안으로 약간 오므라든 형태이다.[1]
바닥에는 4행 4자씩 16자 '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 명문으로 '3년전 승하한 광개토대왕을 추모하기 위해 을묘년 415년에 만든 열 번째 그릇' 임을 알 수 있다. 명문 상단에 보이는 '井'의 표시는 다른 고구려 유물에서 간혹 등장하는 기호로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호우총은 출토 토기로 보아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호우는 광개토대왕을 기념하는 의례행위에 사용하기 위해 고구려에서 만든 것으로, 만들어진지 약 백년이 지난 어느 시점에 비로소 무덤 속에 부장된 것이다. 호우가 만들어질 때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었던 신라내물왕의 왕자 복호(卜好)와 같은 인물이 가지고 들어 왔을 것으로 보고, 호우총의 피장자를 복호나 그 후손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 명문을 통해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의 대외 교류나 정치적 관계를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받아 왔다. 또한 역사적 중요성과 함께 청동호우는 희소한 고구려 금속공예품이라는 점과 명문이 있어 정확한 제작연대를 유추할 수 있는 편년자료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높다.
시각자료
사진
영상
KBS역사추적, "역사추적-광개토대왕 호우 왜경주에 묻혔나',(방송일: 2009.01.10), YouTube, 작성일: 2017년 02월 21일.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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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 | A는 B을 제작하였다 | 415년 |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 | 광개토대왕 | A는 B과 관련이 있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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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년 | 고구려가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를 제작하였다 |
1946년 |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이 발견되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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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24131 | 126.980470 | 국립중앙박물관은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을 소장하고 있다 |
35.840541 | 129.208748 |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은 호우총에서 출토되었다 |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웹자원
- "호우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
『두피디아』online , 두산백과. -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
『문화유산정보』online , 문화재청. - "호우총 청동그릇",
『e뮤지엄』online , 문화체육관광부.
- "호우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