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연
정의
중국 5호16국(五胡十六國)의 하나로 모용수가 세운 선비족의 나라이다.
내용
전진(前秦)의 부견(苻堅) 휘하에 있던 모용수는 384년 연왕(燕王)을 자칭하며 후연을 세우고 중산(中山 : 하북성 정현)에 도읍을 정하였다. 후연이 융성할 때는 영토가 중산과 업(鄴)을 중심으로 한 화북평야(華北平野) 일대에서 북으로는 몽골 남쪽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웃한 북위(北魏)가 강대해짐에 따라 충돌이 잦았다. 394년 북위를 공격하였으나 삼합피(參合陂 : 大同 부근)에서 대패하여 모용수는 사망하고 북위군에게 중산이 함락되었다. 이후 4대왕 모용희(慕容熙)의 학정이 심하자, 407년에 한인(漢人)인 풍발(馮跋)등은 모용희를 살해하고 모용보의 양자인 고구려 출신 모용운(慕容雲 : 高雲이라고도 함)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당시 광개토대왕은 모용운에 사신을 보내 동족의 우의를 표하기도 했다. 409년에 풍발이 모용운을 살해하고 북연(北燕)을 건국하였다.
고구려와의 관계
고구려와 후연은, 396년 모용보(慕容寶)가 후연왕으로 즉위하여 광개토왕을 '평주목요동대방이국왕(平州牧遼東帶方二國王)'에 책봉하고, 400년에는 후연에 사절을 파견하는 등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400년 후연왕 모용성(慕容盛)이 소자하(蘇子河) 유역에 위치한 고구려의 남소성(南蘇城)과 신성(新城)을 침공해 옴으로써 평화는 깨지게 된다.
이에 광개토대왕은 402년 요하를 건너 평주(平州)의 중심지인 숙군성(宿軍城)을 공격, 평주자사(平州刺史) 모용귀(慕容歸)를 도망치게 했고, 404년에는 후연을 공격하여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이 과정에
서 고구려는 요동성(遼東城 : 지금의 遼陽)을 비롯한 요동(遼東) 이동 지역을 차지했으며, 405년 후연의 요동성 침입과 406년 목저성(木抵城: 지금의 木奇) 침입을 격퇴함으로써 요동 지역에 대한 장악을 더욱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요서(遼西)로의 진출은 409년 후연을 멸망시키고 등장한 풍발의 북연(北燕)과 우호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일단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