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덕부
심덕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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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심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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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문신 |
유형 | 개국공신 |
개요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그의 다섯째 아들인 심온(沈溫)은 세종의 국구(國舅)가 되었으며, 여섯째 아들인 심종(沈淙)은 태조의 부마가 되어, 왕실과의 혼인을 통하여 거족(巨族)으로 성장하는 기틀이 그에게서 이루어졌다.
충숙왕 복위년 말에 음직(蔭職)으로 사온직장동정(司溫直長同正)에 출사하였고, 우왕 초년에 우상시(右常寺)를 거쳐 예의판서에 승직되었다. 1378년(우왕 4)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서 서해도원수를 겸하여 여러 차례 왜구토벌에 공을 세웠고 특히 1380년에 도원수 나세와 함께 최무선이 제조한 화포를 처음 실전에 사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1385년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겸 동북면상원수(東北面上元帥)로 북청(北靑)에 침략한 왜구를 토벌하는 등 조선 태조(李成桂)와 함께 동북면에 침투한 왜구를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1388년의 요동 출병 때는 서경도원수(西京都元帥)로서 조선 태조의 위화도회군을 도왔다.또한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우는 폐가입진(廢假立眞)에는 조선 태조·정도전·정몽주와 더불어 주도적인 구실을 하여 이른바 9공신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조선이 개국한 이듬해인 1393년 회군공신(回軍功臣) 1등에 추록되고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다. 1394년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의 판사가 되어 한양의 궁실과 종묘를 세우는 일을 총괄하여 1년동안 수도 한양의 성곽, 궁궐들을 모두 완성시켰다. 1399년(정종 1) 좌정승이 되었다가 이듬해에 73세의 고령으로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다.
민족기록화와의 연관성
최대섭의 민족기록화 '화포와 화약을 제조하는 최무선'의 주요 인물 최무선, 원나라에서 귀화한 나세와 함께 진포해전을 이끌었다.
최무선이 제조한 화약과 화포를 실전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노드 및 관계 테이블
노드 | 관계 | 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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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 | ~와 관련된다 | 심덕부 |
나세 | ~와 관련된다 | 심덕부 |
심덕부 | ~을 지휘했다 | 진포대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