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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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건 (幅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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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360px|thumb|center|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
대표명칭 | 복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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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幅巾 |
착용신분 | 왕세자, 사대부 |
착용성별 | 남 |
목차
정의
조선시대 쓰던 건(巾)의 하나로, 베의 온 폭을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복건[幅巾]이라 이름 붙였다.
내용
복식구성
원룡문단 부금 복건[1]
착용신분
왕실이나 사가 어린이와 사가의 성인 남자가 착용하였다.
착용상황
어린아이의 백일과 돌 때 사규삼(四䙆衫)이나 전복(戰服) 등과 착용하던 쓰개이다.
조선시대 일반 사가의 관례복으로 초가시의 쓰개로,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전래와 함께 사대부의 예복이자 연거복(일상복)으로 착용했다.
형태
위는 둥글고 뾰쪽하며 뒤에는 넓고 긴 자락이 늘어지게 해서 양쪽 옆에 있는 끈을 뒤로 잡아맸다. 옛날에는 흰색 베로 만들었는데 뒤에 검게 물들이게 되었고, 차차 검은 비단으로 바꿔서 제작했다.[2]
옛날에는 검은색 견[黑絹]으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겨울에는 검은색 단[黑緞]을 사용하고, 여름에는 검은색 사[皁紗]를 사용한다.(『林園經濟志』 卷50, 「贍用志, 服飾之具」, ‘幅巾’: “……古以皁絹爲之, 今冬用黑緞, 夏用皁紗.”) | ||
출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권50, 「섬용지(贍用志), 복식지구(服飾之具)」 |
어린이는 금박(金箔)으로 각종 무늬를 입히거나 이마 부분에 옥이나 석웅황을 달아 장식했다.
기타
유래
한대(漢代)의 두건(頭巾)에서 변형된 형태이다. 처음에는 재야의 사(士)가 썼으나, 한말(漢末)에 이르러 왕공(王公)들이 사의 옷을 입고 복건을 썼는데, 우아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인해 착용하게 되었다고 한다.[3]
위진남북조시기에는 도교가 유행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추어 더 많이 착용하였다. 사마온공(司馬溫公)에 이르러 심의와 함께 연거할 때 착용하는 관복[燕居冠服]이 되었고, 주자가 다시 『가례(家禮)』에 싣자[4] 마침내 예복이 되었다.[5]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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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집람 | 복건 | A는 B를 기록한다 | |
주자가례 | 복건 | A는 B를 기록한다 | |
삼재도회 | 복건 | A는 B를 기록한다 | |
임원경제지 | 복건 | A는 B를 기록한다 | |
왕 | 복건 | A는 B를 착용한다 | |
왕세자 | 복건 | A는 B를 착용한다 | |
사대부 | 복건 | A는 B를 착용한다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 李永馥(1983) 深衣에 關한 硏究. 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P. 23.; 金仁淑, 「深衣考」, 『의류직물연구 』, 제 5권,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직물학회, 1977, 67쪽.
- ↑ 『삼재도회』.
- ↑ 『가례(家禮)』에는 제작법도 같이 기록하고 있는데, 그 방법은 아래와 같다.
- ↑ 『林園經濟志』 卷50, 「贍用志, 服飾之具」, ‘幅巾’: “……及司馬溫公, 與深衣同作燕居冠服, 朱子又載之 『家禮』, 則遂爲禮服矣.……”
-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가례집람(家禮輯覽)』
- 『주자가례(朱子家禮)』
- 『삼재도회(三才圖會)』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金仁淑, 「深衣考」, 『의류직물연구』, 제 5권, 이화여자대학교 의류직물학회, 1977
- 李永馥, 「深衣에 關한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 정혜경, 『深衣』, 경남대학교 출판부, 1998.
- 孫機, 『中國古與服論叢』, 文物出版社,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