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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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 | |
작가 | 오승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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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연도 | 1975년 |
규격 | 300호(197x290.9cm) |
유형 | 전쟁 |
분류 | 유화 |
소장처 | 전쟁기념관 |
개요
신라군이 매소성(買肖城: 지금 경기도 연천군 대전리산성)에 주둔하고 있는 당병(唐兵) 20만명을 공격 섬멸하는 장면.
설명
작품 소재
신라가 당나라와 군사동맹을 맺고 660년에 백제를 패망,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킨후, 자주성을 찾기 위해 일으킨 나당전쟁에서 당나라에 큰 전승을 거둔 매소성전투를 그린 그림이다. 문무왕 15년(675년) 9월 당나라 이근행(李謹行)이 2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오자 신라군이 매소성에서 이를 크게 격파하여 패주시켰는데, 이 싸움의 승리는 나당전쟁에서 분수령을 이루었고 신라는 나당전쟁의 승기를 잡을 결정적 기회를 얻어 당(唐)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하고 통일신라가 명실상부하게 한반도 중남부를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1]
작품 배경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靑山面) 대전리(大田里)의 대전리산성은 한탄강을 끼고 있는 천혜의 험지에 백제 초기에 축성되었다. 백제, 고구려, 신라로 주인이 바뀐 역사의 격전지로 현재 남아 있는 성터는 둘레 670m, 넓이 1,960㎡로, 1984년부터 실시된 역사편찬위원회의 실측조사결과 대전리산성이 매소성의 터임이 확인되었다. 매초성이라고도 불리운다.[2]
작품 구도
노랗고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왼편의 산성에서 몰려 내려온 신라의 군사들이 패퇴하는 당나라 군사들을 쫓고있다. 추격하는 신라군의 창에 옆구리를 찔린 당나라 병사가 괴로워하고 있는 장면에서 이 전투의 승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관련 민족기록화
관련항목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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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우 |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 | A는 B를 그렸다 | 1975년 |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 | 나당전쟁 |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670년-676년 |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 | 매소성전투 | A는 B를 소재로 삼았다 | 675년 |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 | 매소성 | A는 B를 배경으로 한다 |
시간정보
시간정보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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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 오승우가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를 제작하였다. |
1979년 | 청와대가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를 대여하였다. |
1991년 01월 31일-1992년 01월 30일 | 청와대가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를 대여하였다. |
1998년- | 전쟁기념관가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를 소장하고 있다. |
공간정보
위도 | 경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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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86846 | 126.974875 |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이 청와대에 대여되었다. |
37.537147 | 126.977145 |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이 전쟁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
38.012360 | 127.080157 | 오승우-신라의 당군 격퇴와 삼국통일은 대전리산성을 배경으로 한다. |
그래프
참고문헌
- 대한민국구회위원동우회, 『민족기록화 전승편』, 한국도서출판공사, 198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