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탑비문 작업노트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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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샘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6월 14일 (수) 01:25 판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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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堤川 月光寺址 圓朗禪師塔碑])
BHST Stele.png
대표명칭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영문명칭 Stele for Master Wonrang from Wolgwangsa Temple Site, Jecheon
한자 堤川 月光寺址 圓朗禪師塔碑]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 서빙고로 137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360호
문화재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찬자 김영(金穎)
서자 순몽(淳夢)
각자 진윤(眞胤)
서체 해서(楷書)
승려 대통(大通)
건립연대 890년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월광사지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승려 원랑선사 대통(圓朗禪師 大通, 816-883)의 탑비.

내용

개요

이 비는 본래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월광사터에 세웠던 것으로 1922년 3월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1]

비의 전체 높이는 3.95m이고, 비신의 높이 2.26m, 폭 0.97m이다.[2]

상단부 글자의 마멸이 비교적 심한 편이고, 전체적으로도 눈으로 글자를 판독하기 곤란하다.[3]

대통(大通)월광사(月光寺)에 머무르면서 사찰을 크게 발전시키다가 883년(헌강왕(憲康王) 9)에 입적하였다. 탑비는 890년(진성여왕 4)에 건립되었다. 비문을 지은 사람은 문신인 김영(金穎)이 짓고, 글씨는 승려 순몽(淳夢)이 썼으며, 글자는 제자인 진윤(眞胤) 등이 새겼다.[4]

보물 제360호. 전체 높이 3.95m, 비신 높이 2.26m, 너비 97㎝, 두께 24㎝.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동창리 월광사지에 있던 것을 1922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놓았고,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는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석비 형식을 따랐으며, 전체적인 비례가 잘 조화된 단아한 조형이다. 890년(진성여왕 4)에 건립되었다.

비의 주인공인 원랑선사는 856년 당나라에 유학하여 11년간 명산을 편력하고 귀국한 뒤, 월광사에 머무르면서 선문(禪門)을 빛나게 하였다. 68세로 입적하자 헌강왕은 ‘원랑선사’라 추시(追諡: 죽은 후에 시호를 내림)하고 ‘대보광선(大寶光禪)’이라는 탑명을 내렸다. 비문은 문신인 김영(金穎)이 짓고 글씨는 승려 서예가 순몽(淳蒙)이 썼는데, 계선(界線) 안에 2㎝ 정도로 쓴 구양순(歐陽詢)체의 해서이다. 현재 월광사 터에는 탑의 부재 일부만 남아 있다.-민백

비문

비문에서 원랑선사(圓朗禪師)가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위앙종(潙仰宗) 계통의 선을 수학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선사의 스승인 낭혜화상(朗慧和尙) 이 마조(馬祖) 도일(道一) 계통의 선을 공부한 사실과 더불어 신라 하대 선종사상의 학풍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5]

지식관계망

"그래프 삽입"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국립중앙박물관 A는 B에 있다
헌강왕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A는 B의 이름을 지었다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대통 A는 B를 위한 비이다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김영 A는 B가 비문을 지었다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순몽 A는 B가 비문을 썼다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진윤 A는 B가 비문을 새겼다

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원.
  2.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원.
  3.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원.
  4.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원.
  5. "월광사원랑선사대보선광탑비", 금석문세부정보,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online, 국립문화재연구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