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배
흉배 (胷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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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360px|thumb|center|]] | |
대표명칭 | 흉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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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胷褙 |
착용신분 | 문무백관 |
착용성별 | 남성 |
목차
정의
내용
복식구성
착용신분
흉배는 옷의 가슴과 등에 달아 착용자의 계급을 표시하는 사각형 장식이다. 계급을 표시하는 주요 도안을 중심으로 장생문과 보문 등을 배치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흉배 문양을 직조한 옷감으로 단령을 만들어 입었으나, 점차 직조된 흉배 문양의 조각을 잘라서 흑단령에 붙이다가 임진왜란 후에는 대부분 자수 흉배를 달게 되었다. 단종2년(1454)에 명나라의 제도를 본떠 도통사는 사자, 대사헌은 해치, 문관 1품은 공작, 2품은 운학, 3품은 백한, 무관 1·2품은 호표, 3품은 웅비를 달도록 정했고, 당하관 이하는 흉배를 달지 않았다. 기록에는 없으나 17세기 흉배 유물을 보면 문관의 경우 운학흉배와 공작흉배, 백한흉배,노사(해오라기)흉배 등이 사용되었고, 무관의 경우는 사자흉배와 해치흉배, 호흉배를 사용했다.숙종대에는 6품 이상에게 흉배를 사용하도록 하였ㄷ으나 영조대에는 9품까지 흉배를 사용하게 하였다. 문관 상상관은 운학흉배, 당하관은 백학흉배를 사용했고 무관은 사자흉배와 호흉배를 사용했다. 정조대에는 문관 당상관은 쌍학흉배를 당하관은 단학흉배를 사용하는 제도가 확립되었으며 정조말에서 순조 초인 19세기 초에는 무관 당상관이 쌍호흉배를 사용하고, 당하관은 단호 흉배를 사용하는 제도가 정착되었다. 96
착용상황
형태
기타
영조대의 『속대전』에 문관 당상관의 운학흉배와 당하관의 백한흉배로 규정된다. 또 정조대 이후에는 문관 당상관은 학 두 마리가 한 쌍을 이루고 있는 쌍학(雙鶴), 당하관은 학 한 마리인 단학(單鶴), 무관 당상관은 호랑이 두 마리가 쌍을 이루고 있는 쌍호(雙虎), 당하관은 호랑이 한 마리인 단호(單虎)를 사용하였다. [1]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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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배 | 문무백관 | A는 B를 착용하였다 |
흉배 | 단령 | A는 B에 착용한다 |
흉배 | 속대전 |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
시간정보
공간정보
시각자료
갤러리
영상
주석
- ↑ 강순제·김미자·김정호·백영자·이은주·조우현·조효숙·홍나영, 『한국복식사전』, 민속원, 2015, 364~365쪽.